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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Nov 28. 2023

여성기억 1920 03 100년 전 여성 취업논쟁

근대여성 풍경


  이제 청년 여성들을 만나면 누구라도 취업은 첫 번째 필수 요건이라고 이야기한다열심히 공부해서 취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은 그래서 자신의 삶의 경로를 어떻게 계획할지 고민이 많다. 2000년대 여성 취업과 관련한 신문기사 제목을 간단하게 살펴봐도 여성들의 고민의 지점을 짐작할 수 있다.  ’ 대졸여성백수 20만 명 육박‘(서울신문, 2010.3.20.), ’ 고학력녀가 결혼 기능성 더 떨어져‘(문화일보, 2013.10.15.), ’ 누가 저출산의 주범인가?‘(경향신문 2017.3.4.), ’ 경력이냐 출산이냐 한국여성의 괴로운 선택‘(동아일보, 2019.8.12.)  지금도 이어지는 취업을 둘러싼 이 같은 논쟁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여성들이 언제부터 사회적 활동을 시작했는지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1960년 산업화 이후 일거라고 지레짐작 대답한다그러나 여성들은 우리나라 근대화가 시작되던 1900년 전후 취업여성으로 일하기 시작하였고식민지하였지만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함께 다양한 방면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잡지나 신문기사들을 보면 종종 여성들이 일하는 영역의 직업탐방 기사들이 실리는데 간호부여직공유모여교원보모기생 등의 직업과 여의사와 기자 그리고 아직은 우리말의 직업명이 없었던 직업들로 헬로걸(전화교환수), 데파트걸(백화점 점원), 버스걸(여차장), 티켓걸(극장 표 판매원), 가솔린걸(주유원등 생소한 직업들이 소개되어 있다.     


   물론 1920년대 이렇게 근대적 직업에서 취업 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아직 소수였고 드물었지만 사회적 관심과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아직 전통적인 관습과 사고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여성들이 일터에 나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지만여성들은 식민지하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 공장 여직공이 되거나근대 교육을 통해 계몽적 의식을 갖고 여성도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둘씩 직업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하였다특히 근대 교육의 확대로 여성들도 보통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사회에 진출하는 사례가 천천히 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취업 여성에 대한 시선은 당시에도 그리 곱지 않았다. 1926년 한 신문기사의 필자는 교육받은 여자가 늘어가면서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여성도 늘어나고 있으나 마땅한 직업이 없어 노처녀가 되고 쓸데없는 유혹만 받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걱정이라고 세태를 진단한다이 같은 필자의 걱정은 곧 교육받은 여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져 교육을 받아 쓸데없이 눈만 높아져 시집갈 데가 없다.. 특히 고등 보통학교 출신 여자로 밥 버리 할 직업은 거의 없다” 고 지적하면서 교육받은 여자들의 당면 문제의 해결책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는 어서 시집을 가라... 남편 보는 표준을 바꾸어 시집가라”라는 충고를 던지고 있다.     

  

   어째서인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가이상하게도 여성의 취업을 두고는 100년 전에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져 취업찬성론과 반대론이 연일 신문과 잡지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우선 여성의 취업과 경제적 독립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     

  

   “ 여자들도 지금 와서는 예전 시대의 모든 불완전한 제도를 부인하고 엄청나게 구속과 압박과 전제와 학대가 많든 그 속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여자에게도 같은 권리를 다오.... 이 주장의 부르짖음이 실천되도록 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독립 즉 생활의 독립을 도모치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첫째여자도 자기 손으로 일하여야 할 것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 남의 아래서 허수아비나 인형같이 사는 삶을 벗어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 <신여성>, 1923년 4월호)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여성의 고유한 역할을 벗어나 취업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여성의 천성이나 천직인격의 특성상 직업생활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은 단지 전통적인 보수적 남성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담론의 외피를 쓰고 크게 확대되었다

 

  “ 가정생활과 직업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마는 두 가지 중 완전히 조화시킬 수  없는 경우에 여성은 직업을 버리고라도 가정을 가져야 할 것임이 물론이다실상 여성은 상품을 만드는 데서보다도 가정에서 제2세를 가장 완전히 길어내는 데에 하늘이 준 능력과 성스러움이 있는 것이다...” (‘일반 여성의 타곤 난 천직과 직업(1,2)’ 동아일보, 1925. 11.7-8.)

    

   여성의 천직은 모성에 있고 가정이 제1순위라는 주장이다이 같은 주장에 전문직 취업 여성들도 동조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다음은 이광수의 부인이자 전문직 의사였던  허영숙의 주장이다.     

   

   “ 여자의 인격이 갖는 특수한 힘은...  1) 자녀의 인격의 기초를 세우는 특수한 힘을 가진 것 2) 여자의 특수한 사랑과 부드러움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남자에게 감화와 위안을 주는 것   3) 여자의 자랑인 순결(정조를 중심으로 하여)  헌신적 봉사의 정신으로 남자를 깨끗하게 하고 감화케 하는 것이다..”     

   

  문필가의 아내이면서 전문직 의사였고 신문 기자로 열혈 활동을 했던 전문직 지식인 여성이 자신은 빼놓고 일반 여성에게 이러한 권유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100년 전의 이야기지만 여성의 취업이 보편화되고 있는 현재에도 불쑥불쑥 만나게 되는 그런 이야기 같지 않은가?  100년 전 그때에도 남성의 취업에 대해서는 논쟁이 없었지만여성의 취업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상이한 관점과 주장이 대립하고 있었고이 논쟁은 결을 달리하면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은 그래서 여전히 고민이 많다.       



 자료 : ‘일반 여성의 타고 난 천직과 직업(1,2)’ 동아일보, 1925. 11.7-8.

         婦人問題의 一面남자할 일 여자할 일[14](春溪 許英肅), 동아일보 192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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