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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Oct 12. 2019

내가 경험했던 것들만 이야기하기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무척이나 많이 들었던 질문이지만, 한국에 오니 특히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이번 여행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특히 유럽과 같이 다양한 도시와 국가를 다니는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의례적으로 이 질문은 주어진다.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곰곰이 생각해본 뒤에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똑같은 질문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서로 다른 목소리로 계속 나에게 다가오자, 고민은 깊어졌다. 내가 좋았던 도시가 그곳이 맞는지, 그곳이 진짜 가장 인상 깊은 도시였는지, 그곳보다 더 좋았던 도시는 없는지 혼자서 계속 되묻게 되었다. 사실 여행했던 모든 곳이 각각의 나름대로 좋았던 것이 있었고, 개성에 맞는 각각의 좋음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큰 행복을 주었다. 모든 도시와 모든 나라가 좋았는데, 어디가 제일 좋은지, 어디가 최고였는지를 굳이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유럽과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었고, 그것을 참고로 여행을 계획했다. 한 국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한 가이드북부터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에세이와 유럽 전역을 걸쳐 BEST를 모아놓은 책까지 찾아봤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65일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여행할 국가와 도시를 선정했고, 선정한 이후에는 더 상세하게 도시의 문화와 유명 관광지, 맛집을 검색했다. 이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평가가 이미 개입된 셈이다. 그만큼 누군가의 평가뿐 아니라 무언가를 평가하는 행위는 나에겐 너무 익숙했고, 그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고, 사람들의 평가에 특히 예민한 편이다. 특히 내가 경험하지 않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에 예민한 편이다. 다른 사람이 음식점, 제품에 부정적인 평가를 남겼다면, 괜스레 나 역시 그 음식점과 제품이 꺼려진다. 내가 직접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 사고방식이 너무도 익숙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나의 사고방식이 틀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의 사고방식은 경쟁 사회와 무척 많이 닮아있었고, 이는 경쟁에서 지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고,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나는 모든 순간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와 관계하는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사용으로,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제품을, 도시를,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가. 이번 여행에서 다녀온 모든 도시는 각각의 개성만큼 좋았고, 각자 가진 특징만큼 좋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좋았고, 날씨가 좋아서 좋았다. 남들이 다 아는 랜드마크가 있어서 좋았고, 남들이 다 아는 랜드마크가 없어서 좋았다. 관광지의 줄이 길어서 좋았고, 관광지의 줄이 길지 않아서 좋았다. 그들이 가진 개성을 나에게 마음껏 보여주는 도시들이 있어서 나는 여행 내내 행복했다.           

"이번 여행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라는 질문에 모든 도시가 좋았다는 대답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도시가 좋았다고 대답하고 싶다. 내가 감히 무언가를 평가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부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발견하는 것을 감히 막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잠시 그곳에 머물렀을 뿐이고, 그곳을 잠시 맛보았을 뿐이다. 모든 경험이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고, 나는 모든 기억을 이따금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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