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내가 파렴치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의 상처도 바라지 않고
그 누구의 험담도 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지만
결국 사회에서 내 자리는 없었다.
파렴치한 사람이었다면
나의 행복만을 좇으며
짧은 인생이라도 가볍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끝이 파국일지라도 말이다.
요즘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행복만을 좇는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인생일까.
그것은 어쩌면 행복이 아니라
잠시 스쳐가는 쾌락이겠지.
마흔이 되어 알게 되었다.
가치 있는 인생에는
대개 고통이 함께 따라온다는 것을.
내가 원했던 삶은
가치 있으면서도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삶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결혼이었다.
오늘 상담사는 물었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
나는 말했다.
여자로서 살고 싶고, 엄마로서도 살고 싶다고.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만큼
경제적으로도 유능해지고 싶다고.
상담사는 다시 물었다.
이혼한 지금,
여자로서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아이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이에게 남을 상처가 두려워서라고.
상담사는 말했다.
아직 충분히 예쁘고,
가치 있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그 말들이 고마우면서도
나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요즘은
행복을 찾는 일이 참 어렵다.
마치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행복의 양을
정해진 만큼만 가지고 태어난다면,
나의 몫은 마흔이 되기도 전에
모두 소진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모두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왜 내 머릿속엔 이렇게 생각이 많을까.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나의 행복만을 좇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파렴치한 인생은
결국 불행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조금 덜 행복하더라도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
소소하게 글을 쓰는 일.
나는 나의 불행의 이유를 안다.
여자로서의 삶이 끝난 것 같다는 감각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한다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분명히 안다.
아이와 떨어지는 선택은
내 가슴을 도려내는 일이라는 것도.
그래서 지금은 내가 원하는 것 중 일부를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마흔이 되니
사람을 대하는 일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아무 남자나 만나고 싶지 않고,
쉽게 마음을 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날의 나는
이끌림 하나로 결혼했고
운이 좋아 10년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나만 보며 살던 삶에서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것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었다.
지금의 나는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아이의 마음과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행복하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차라리 파렴치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더 행복했을까.
하지만 소심한 나는 안다.
나는 끝내 파렴치해질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는 삶이
나의 안전지대라는 것도.
내 나이 마흔,
파렴치하지 않고,
인내를 배우며 가치 있는 삶을 살다 보면
끝내 파렴치함을 멀리한 기쁨이 올 것이라 믿는다.
하루하루 눈을 뜨는 일이 버거워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파렴치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