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터 말수가 줄었다.
말을 줄이는 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 되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나는 그런 방법을 택했던 걸까.
어릴 적, 쓰러져 가는 집에서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웠다.
딸 셋은 매일 울었다.
아빠는 엄마를 때렸고
엄마는 아빠를 할퀴었다.
물건은 하나둘 부서졌고
어린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벌이었다.
전쟁터 같은 나날들 속에서 자랐던 기억들.
그래서 나의 꿈은 늘 행복한 가정이었다.
가난하고,
환영받지 못하던 어린 사회생활 속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선생님을 만났다.
늘 문제아였던 나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준 어른이었다.
공부를 하면
관심을 얻을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전까지의 나는 트러블 메이커였는데.
그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지만
늘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악의가 없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뭔가를 했을 뿐이었고
그저 공부에 사활을 걸었을 뿐이었다.
뒤늦게 간 대학에서는
모범상을 받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도 했다.
말수는 더 줄였고
선한 행동을 하려고 애썼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할 수 있는
나의 선한 마음을 표시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일에 성실했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건 대인관계 였다.
불우한 가정환경속에 건강한 사회생활은 없었다.
어릴 적 나에게는
인성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아직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성적표를 보며
왜 매일 싸우냐고 핀잔을 주던 어른의 얼굴을.
말수를 줄이고
선한 행동을 많이 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 믿으며 자라자
세상은 그럭저럭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었다.
하지만 말이 줄어들수록
생각은 점점 커져갔다.
가난한 집에서
공부만이 희망이라고 믿었던 나는
어느새 복잡한 생각만 늘어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었지만
여러 생각이 겹쳐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집중하려 애썼지만
수능 모의고사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따돌림은 더 심해졌다.
고3이 되자
학교를 결석하기 시작했고
그 무렵
내게 어떤 정신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달 정도 약을 먹고 나서야
꿈을 꾼 것처럼
현실감이 돌아왔다.
침묵을 선택하며
학폭과 공부와 싸우던 날들.
나는 왜,
서울대에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조현병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