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능하지 않았다. 버티지 못했을 뿐이다.

by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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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병을 앓으면서도

공부를 꽤 잘했고,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으며 살아왔다.


모의고사 성적은 오르지 않았지만
벼락치기로 외운 내신은 늘 좋았고,
결국 간호과에 진학했다.

정신과 약이 너무 졸리고
간호학 공부는 해부학부터 쉽지않아서
끝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때는 내가 아프던 시기였다.


지역농협에 취직했을 때도
CS 교육을 받으며 친절해졌고
‘유망주’라는 말과 함께
금융텔러 기회까지 왔다.

하지만 미숙한 사회생활 끝에
그곳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고3 때는 따돌림을 당했다.
무시하고 내 길을 가면 되는 일인데
그게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 많은 곳에서 오래 버티는 법을
점점 잃어갔다.







뒤늦게 간 대학에서는
과대표를 맡고 모범상을 받았다.
학점은행제였지만
학비가 부족해 2년을 겨우 다녔고,
결혼 후에야 4년제를 마쳤다.



대학 시절엔
마트 시음 알바를 했다.
판매량도 나쁘지 않았다.


휴학 기간엔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고
목소리가 좋다며
선내 방송을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수면 부족이 쌓였고
방송을 하다 울고 있는 나를
어느 날 발견했다.
그 계약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나는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선택했다.
임신, 출산.


여러 사람이 섞인 사회보다
훨씬 작은 사회였던 결혼생활은
의외로 행복했다.

돈은 늘 없었지만 남편은 부양의 의무를 가지고 일했고, 그 마음이 고마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원룸에서 시작한 결혼생활 .


아이가 생긴 뒤
시아버지가 쓰러졌고,
나는 가진 돈 천만 원을 남기고
집을 샀다.
이사를 너무 많이 다닌 삶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층간소음에서
나는 끝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사는 계속되었고
삶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남편이 성추행으로
세 번째 경찰서를 갔을 때,
대출을 끌어다
합의금과 변호사 비용을 냈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두 번의 전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는 여섯 살이었고
나는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없었다.


나는
돈 벌기가 너무 어려워서
결혼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빚이 늘어갔다.
그의 빚도, 나의 빚도.

결국 나는
2억 원의 채무로,

그는 7천만원의 채무로,
회생을 신청했다.


이혼 후,
살기 위해 다시 일해야 했다.

대학생 때의 경험을 살려
마트 시음 알바를 다시 시작했지만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우리는 떨어져 살다가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자주 투덜거렸고
나는 버티는 쪽이 되었다.


사랑 없이 함께 사는 이유는 하나다.
아이 때문이다.
떨어져 살면
양육비를 받지 못할 것 같아서.


사람들은 묻겠지.
성추행 3범과 사는 게
역겹지 않냐고.


나도 힘들다.
사랑 없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사는 일은.


그럼에도
여러 곳을 떠돌다 돌아온 그를
나는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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