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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Mar 10. 2023

누굴 위한 친목회?

그만 좀 떠넘기세요.


  묘한 일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모여 전체 회의를 하고, 환영회를 하는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날이었는데, 갑자기 묘한 일이 벌어졌다. 2022년 친목회를 마무리하고, 2023년 친목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자리였다. 내가 전달받기로는 새로운 친목회장은 여러 부장님들 중에 선정한다고 했다. 부장님들 안 그래도 바쁘신데 더 고생하시겠네, 생각하고 말았다. 내 일이 아니니, 도움을 요청하시면 언제든 도와드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어떤 선생님 한 분이 나를 추천했다. 갑자기, 나를? 친목회장으로 신규를 시키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표정이 급격하게 굳는 것을 참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복수를 하는 차원에서 다른 사람을 걸고넘어져야 하나, 나에게는 그럴 대상이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이 하라고 떠맡기는 행동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내가 단일 후보니, 내가 회장이 되었단다. 이게 말이 되는 처사일까? 마음이 심란하다. 친목회는 정식 업무도 아니고, 교직원들 간 화합을 위해 결성된 내부 단체일 뿐이다. 회장을 맡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친목회를 그만하면 될 일이다. 그만큼 다들 애정이 없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끼리 서로 자유롭게 모이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친목회장을 나에게 맡겨가면서까지, 이 사람들은 뭘 유지하고 싶은 걸까?

회식 날짜를 정하고, 각 학년별 간사님들과 모여 회의를 한다. 전체가 모여하는 회식은 없는 일이 되고, 지원금을 각기 드리는 방식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렇게 안내를 드리니, 몇몇 부장님들이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오신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이냐고, 화를 내듯, 따지듯 말씀하신다. 다들 원하는 일이라 그렇게 되었다는 말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설마 내가 회장이라서, 회장의 지위를 이용해서 여론을 조작했다 생각하시는 것일까? 간사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말씀드린 것이 전부인데, 왜 나에게?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지 않다. 친목회를 맡게 되었을 때, 몇몇 친한 선생님들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어떻게 해도 욕을 먹는 자리니,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런데 내가 정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나보다 30년은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말을, 내가 정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 거라 여기고 한 말일까? 정말 원하는 것이 있었다면 자신이 회장의 자리를 맡았으면 될 일이다. 간단한 정답이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질 때는 언제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을.

예전에는 선생님들은 다들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다. 다들 상식적이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다 똑같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밖에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쟁취한다. 그게 설령 다른 누군가를 짓밟는 일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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