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번째 투자

by DJ

40살이 넘은 지금, 나는 비로소 ‘투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번의 실패와 성장을 거쳐왔습니다. 투자는 단순히 돈을 불리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투자의 궤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나의 생각과 철학을 정리해 두고자 합니다. 그것이 곧 나의 인생 공부이자, 앞으로의 방향을 밝혀주는 나침반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의 첫 번째 투자는 대학 2학년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무엇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배우기 시작한 첫 계단에 막 발을 내딛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증권사에서 근무하던 펀드매니저였습니다. 늘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 증시 지면을 꼼꼼히 살피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조용히 생각에 잠기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신문에는 대부분의 주식 종목이 신문에 인쇄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봉투 하나를 건네셨습니다. 그 안에는 당시로서는 꽤 큰돈인 200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돈으로 중고차를 사도 되지만, 나는 네가 한 번 주식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 한마디가 내 인생 첫 투자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아주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흙수저와 금수저 사이 어딘가의 은수저’ 정도였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원 선생님이 하시던 말이 떠오릅니다.
“아무 때나 피자를 시켜먹을 수 있는 집은 부잣집이고, 주말에 짜장면에 탕수육 세트를 시켜먹을 수 있는 집은 중산층이야.”

그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집은 다행히 주말마다 짜장면과 탕수육 세트를 시켜먹을 수 있는 집이었습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삶. 그 안에서 우리는 성실과 절제를 배우며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나는 한 증권사 지점을 찾아갔습니다. 작은 사무실 안에는 주가 전광판이 깜빡이며 숫자를 바꾸고 있었고, 사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인생의 첫 증권계좌를 개설하던 순간, 괜히 어른이 된 듯한 설렘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주식을 사야 할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아무 이유 없이 ‘한미반도체’라는 회사를 골랐습니다. 한 주에 천 원 남짓한 가격이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투자 목표도 분석도 없이 단순히 “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매수를 눌렀습니다.


노트북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주가를 확인하려면 공강 시간마다 학교 컴퓨터실에 들러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모니터 속 빨간색과 파란색 숫자가 오르내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몇백 원 오르면 팔고, 내리면 불안해하며 기다렸습니다. PER, PBR 같은 낯선 용어들을 공책에 적고, 도서관에서 투자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세상의 흐름을 조금씩 이해해갔습니다. 그 시절의 나는 단타를 하며 원금만 잃지 않기를 바라는 초보 투자자에 불과했지만, 그 작은 경험이 내 인생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돈을 번 것도 잃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는 깨달았습니다. 돈이란 단순한 종이 몇 장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드러내는 언어라는 것을. 주가의 오르내림은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이 숫자로 드러난 결과였고, 시장은 사람들의 심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무대였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투자’란 결국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며, 나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임을 배웠습니다.


중고차를 사는 대신 주식을 선택했던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지금도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은 문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의 200만 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준 씨앗이었습니다. 세상은 늘 예측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하고 책임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경험 때문이었는지 제 첫 차는 둘째 아이를 낳고서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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