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교정을 걷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깨끗한 정복을 입고 007가방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 바른 자세로 걸으며 마주칠 때마다 우렁차게 경례를 하던 그들의 모습은 유난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걸음에는 일종의 ‘규율’과 ‘자신감’이 담겨 있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존경심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멋져 보였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친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ROTC야. 우리 형도 하고 있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ROTC가 정확히 뭔지도 몰랐습니다. 단순히 멋있어 보이는 동아리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은 늘 선택의 시작이 됩니다. 나도 저들과 같은 단정함을 입고 싶었고, 그렇게 옆에 같이 있던 치구와 ROTC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들어가 보니 그것은 단순한 동아리가 아니라 군 장교로 가는 정식 과정이었습니다. 방학마다 훈련소에 들어가 군복을 입고, 얼차려를 받으며 하루 종일 땀을 흘렸습니다. 여름의 태양 아래, 철모 안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내가 왜 이걸 지원했을까’ 후회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훈련은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함께 고생한 동기들과의 유대감은 인생의 그 어떤 관계보다 깊었습니다. 그렇게 2년의 과정을 마치고, 나는 드디어 장교로 임관했습니다.
ROTC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월급을 받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금은 병사 월급이 많이 올라 격차가 크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병장 월급은 8만 원, 소위의 월급은 130만 원이었습니다. 장교로 2년 반을 복무하면 3~4천만 원 정도는 모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감정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군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도 내 손에 쥔 첫 130만 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벌어낸 결과’였습니다. 고생 끝에 겨우 이 정도인가 싶기도 했지만, 동시에 ‘남들은 군대에서 돈도 못 버는데 나는 이렇게 모을 수 있구나’라는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다시 ‘주식 투자’를 떠올렸습니다. 대학 시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식의 세계를 알려주셨던 그 기억이 다시 마음속에서 되살아났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매달 50만 원은 해외 펀드에, 50만 원은 국내 주식에 넣기로 했습니다. 남은 30만 원으로는 용돈을 썼습니다. 그렇게 작은 돈이었지만, 나는 매달 꼬박꼬박 내 미래에 투자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돌이켜보면,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스스로에게 대견했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함부로 돈을 쓰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돈을 모으고 투자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군 생활을 하다 보면 돈은 생각보다 쉽게 흩어집니다. 주말마다 외출이 가능했고, 부대 근처에는 늘 작은 유혹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의 회식, 외출 나가서 마시는 맥주 한 잔, 사소한 소비들이 쌓이면 한 달에 100만 원쯤은 금세 사라질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비 대신 ‘저축’과 ‘투자’를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에는 단순한 절약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마음 한켠에 늘 남아 있었고, 나 스스로 세상과 돈의 관계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오늘’을 위해 쓰던 돈을, 나는 ‘내일’을 위해 모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돈을 모은 행동이 아니라, 미래의 나 자신에게 신뢰를 쌓는 일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축, 시드머니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 나의 두 번째 투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