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정암사 탐방기

적멸보궁에서 부처님을 뵙다.

by 장제모

필자는 정암사에 가게 되면서 사찰 탐방기와 관련한 그간의 글쓰기 행태에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만났다. 그간의 사찰 탐방기는 대개 눈에 보이는 것에 외부 정보를 더하여 자기 감상을 적는 평범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고루한 방식이다. 대개는 방문하는 사찰에 대해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고 그래서 느끼게 될 자기 감상을 쓴다는 즉 사전 계획을 두지 않았다. 이런 자세라 목적지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챙기지 않고 그간에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에다 현장 안내자의 설명을 참고한 후 매체의 정보에 자신이 본 감상을 덧붙이는 식이다. 요약하면 필자가 쓴 상당수의 사찰 탐방기를 이러한 패턴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탐방기 글쓰기 행태를 두고 자기 성찰을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자기 성찰을 말하는 것은 특정 대상을 보고 감상을 쓰려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글을 쓰는 게 예의라 생각하며 특히 유서 깊고 다중의 신앙 상징성을 가진 사찰이나 성당일 경우 더욱 그래야 한다고 느꼈는데 그 계기가 이곳 정암사를 방문하게 되면서다. 사설(私說)이 길었는데 사연을 이야기하면 이곳 정암사는 우리나라 불교사찰 중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 명찰(名刹)인데도 전혀 모르는 체 방문을 했던 데 대한 죄송함 때문이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으로 불자에게는 신성한 성지(聖地)로 경외(敬畏)가 요구되는 현장으로 이해하고 그런 만큼 방문자는 불자 여부에도 모두가 경건함을 갖추고 찾아야 할 공간이라 생각한다. 그런 곳인데도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사찰 탐방기를 쓰자고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마치 어느 지역을 지나가다가 그곳에 명소가 있다 하여 즉흥적으로 방문한 것은 아무래도 아름다운 자세는 아니라 생각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모신 곳으로 불교 신도들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서 신성한 장소로 신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멸보궁은 이곳 외에 경남 양산의 ‘영취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등으로 643년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 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위 다섯 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 수를 볼 때 이들 공간의 존엄성을 느끼게 한다.

2009년, 필자가 소속하고 있는 서울 금천구 시흥3동의 주민자치위원회는 강원도 태백시의 삼수동 주민자치센터와 자매결연을 하여 매년 정기적인 방문을 하였는데 그곳에는 의외로 글 소재가 될 만한 명소들이 많았다.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儉龍沼)’,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 그리고 한반도 생성 역사를 가늠하게 하는 전기고생대 지층 및 하식지형(前期古生代地層ㅡ河蝕地形)인 ‘구문소(求門沼)’ 등이 그런 곳이다. 탐방기를 즐겨 쓰는 필자로서는 이곳의 명소들은 좋은 글감 대상이었는데 아쉬운 점은 탐방기 중 필자가 관심을 두는 사찰이 빠진 것이 아쉬웠다. 명산인 태백산(太白山)이 이곳에 있는데 명찰(名刹)이 없을 리 없고 그래서 이곳 주민에게 사찰 정보를 요청했더니 이곳 정암사를 안내해 주었다.

정암사는 첫눈에 보아도 그 규모가 타 유명사찰에 비해 초라하다 할 정도로 작았다. 사찰 경내도 넓지 않은데다 불사(佛舍)들도 보궁(寶宮)을 포함하여 서너 채에 불과했는데 이들 모두가 여느 사찰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공간도 좁고 건물도 작아 태백산이라는 명산(名山)과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 율사가 건립한 사찰에 더하여 불교 신자에게 존엄의 대상인 적멸보궁이 있는 사찰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필자의 관점은 곧 무지한데다 용렬(庸劣)함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적을 살필 때 그 규모나 경관 등도 중요하게 살펴야 할 가치이지만 그곳에 무엇이 있느냐는 더 중요하게 살펴야 할 가치인 것을 잊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잠깐이나마 크기나 외관 등 세속적 가치관으로 이 명찰을 본 것이다. 하기야 70년에 가까운 시간을 철저히 세속(世俗)에 찌든 필자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자기반성을 한 후 경내를 들러본다.


기록에 의하면, 정암사는 불교 조계종의 제4교구 본사(本寺)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末寺)로서 신라 선덕여왕 때인 636년 자장(慈藏) 율사께서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뒤 전국의 다섯 곳 사찰에 나누어 봉안하였는데 그 한 곳이 이곳 정암사이다. 석가의 신보란 부처님의 정골사리(頂骨舍利)와 가사·염주 등인데 그것들의 일부를 이 사찰의 적멸궁이 위치한 뒤편 산에 있는 ‘수마노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적멸궁은 이 사찰의 본전인 대웅전을 대신하는 법당이지만 불상을 모셔두지 않았다. 즉 적멸궁이란 법당 내에 부처님의 불상을 모시는 대신 석가의 신보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으로 대개 이곳의 바깥이나 뒤에 사리탑을 봉안하고 있거나 계단을 설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보궁 맞은편 언덕의 ‘수마노 탑’에 봉안해 두었다.

“적멸궁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함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였기 때문이라 하는데, 여기서 궁(宮)이란 건물을 칭할 때 전(殿)이나 각(閣)보다 우위에 있음을 말한다.” 곧 부처님의 분신이 있는 곳이니 다른 불사와는 차별을 둔다는 뜻이라 이해한다. “적멸보궁은 본래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타의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寂滅)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다.” 적멸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불교 언어로서 ‘생멸(生滅, 나고 없어짐)이 함께 없어져 무위 적정(無爲寂靜)’함. ‘번뇌의 경계를 떠남’. 또는 ‘열반(涅槃)’ ”이라 한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 봉안의 의미는 열반, 곧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영원한 진리를 깨달은 경지라 한다. “‘적멸보궁’이란 편액(扁額)을 붙인 전각은 본래 진신사리 예배 장소로 마련된 곳이었는데, 처음에는 사리를 모신 계단을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으며, 그 전각은 법당(法堂)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고, 다만 진신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 행위를 위한 불단을 마련하였다.”(참고 두산백과)


이곳에서는 부처님의 진보를 봉안하였다는 ‘수마노탑’은 적멸궁(寂滅宮) 뒤쪽에 있는 산 중턱에 있는데 회녹색 석회석으로 만든 크고 작은 모전석(模塼石)으로 쌓은 탑이다. ‘모전석’이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것으로 이러한 돌을 사용하여 건조한 탑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건축양식이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탑 축조는 많은 수고와 어려운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석탑에 비해 그 수가 많지 않고, 주로 통일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수마노탑’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으나 일행들과 함께하는 여정(旅程)이라 대열에서 이탈하기도 그랬고 또 실제로 시간도 여의치가 않아 멀리서만 보기로 하였다. 산 중턱에 우뚝 서 있어 멀리서도 잘 보이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다른 곳을 보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부처님이 계신 곳이니 준비되지 않은 세속인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지 않겠는가?


정암사는 ‘태백산 정암사’로 현판을 달고 있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의 산은 함백산(咸白山)이다. 그러함에도 ‘태백산 정암사’로 하는 것은 백두대간의 이곳 즉 태백산맥에서 태백산이 갖는 상징성을 말함이기도 하지만 아마 이 사찰이 건립되던 시기에는 이 일대의 모든 산을 태백산으로 칭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경우는 백두대간에 속하는 산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경북 영주의 봉황산(鳳凰山)에 있는 부석사(浮石寺)도 ‘태백산 부석사’로 현판을 달고 있는 것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정암사는 좌우 양쪽과 뒤쪽 산의 울창한 수림(樹林)으로 깊은 적막을 느끼게 한다. 경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물소리가 이 정적(靜寂)을 깨뜨리고 있는데 가만히 그 소리를 듣자니 오히려 더욱 깊은 적막으로 빠져들게 한다. 누구도 듣지 않는 외진 공간에서의 외침은 고독함만 더하는 것과 같은가 보다. 사찰 경내를 흐르는 맑고 투명한 물은 사찰을 둘러싼 산 계곡에서 흘러오는 물인데 이 계곡에는 천연기념물(제73호)인 열목어(熱目魚)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맑은 물에만 산다는 열목어가 이곳에 서식하는 것은 이곳 물의 청정(淸淨)함을 알게 하고 그것은 곧 정암사가 있는 공간의 순도(純度)를 말함이니 곧 부처님의 분신(사리)이 있는 곳의 상징성을 말함이 아닐까?(♣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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