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만들고, 그 일이 왜 중요한가

<장인의 공부> 피더 콘

by 뭐하는작자


사십여 년 목공예 경험을 가진 장인이 말하는 장인의 공부라.


진정한 장인들이 활동하던 시대가 저물어 가던 때에 목수의 길을 선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미 산업화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던 시기, 손의 노동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 그는 굳이 손으로 만드는 일을 택했다.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구 제작자가 되고픈 일념으로 열정을 불태우며 고군분투한 끝에 뉴욕 엘리자베스 거리에 자신의 첫 작업실을 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봄을 맞이했을 때 악성 림프종인 호지킨병 진단을 받게 된다. 작업실을 얻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삶의 바닥을 마주한 셈이다.



화학요법을 받아도 생존율 55퍼센트 불과했지만 아픔과 건강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건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속체였고,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인류의 일원이었다.
남은 생애 동안 내가 뼛속부터 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가구를 한 점이라도 더 만들어 세상에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마술사나 신처럼 생각을 물질로 바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오히려 가구 만드는 일을 소명(calling)으로 받아들였다. 삶이 무너질 수 있는 순간에도 붙잡고 있던 것이 ‘일’이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뉴욕 엘리자베스 거리에 자리 잡은 작업실 (1977년)


무엇에 매혹되었던 것일까?


숙달된 공예 작업을 통해 자신의 손과 정신, 상상력이 선사하는 성취감을 느끼고, 몰입을 통해 창조적인 기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머리로 이해하는 만족이 아니라, 몸을 통과한 확신. 손으로 만지며 확인하는 존재감.


그는 단지 제작자로만 머물지 않았다. 교육자로 확장해 갔고, 후반부에는 비영리 목공 학교를 설립하여 경영자의 자리에서 공예가 자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여정에 힘을 보탠다.

그의 질문은 더 이상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넓어진다.



이 책은 매뉴얼이 아니다.


이쯤 되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장인이 되기 위한 매뉴얼 북이 아니다.

기술을 배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왜 배워야 하는지 묻는 책이다.


공예 작업을 비롯한 창조적인 작업(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자기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질문하고 답하고자 했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창조적 노력은 세상을 향한 기존의 믿음과 통념에 도전하는 과정이며, 그 도전과 결부된 실질적인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영혼을 성장시키고 충만하게 만든다는 점.



몸과 마음이 다시 만나는 순간


현대인의 삶에는 묘한 결핍이 있다.

머리는 바쁘지만 손은 조용하다.


공예는 생각과 몸, 감각과 판단이 하나로 움직이는 경험을 되돌려 준다.

생각이 손끝으로 이어지고, 손끝이 다시 생각을 바꾸는 순환.


그래서 공예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제작자가 담은 정보, 그것을 발견한 기억, 관계, 출처, 그리고 내가 덧붙인 의미까지 겹겹이 쌓여 하나의 서사가 된다.

물건은 결국 관계가 된다.



헛간에서 소나무로 만든 첫 작품 ‘아기 침대’


창조적인 개인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물건을 만들어 내지만 그 작업이 특정 분야와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허공에 소리를 지르는 것에 불과하다.


그가 말하는 창조의 구조는 단순하다.

발견, 구현, 소통 3가지.


나는 발견하고 구현하는 단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소통’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미처 보지 못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물건을 만들어 내더라도 그것이 특정 분야와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허공에 소리를 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개인의 창조는 사회라는 큰 유기체 안에서 비로소 호흡할 수 있다.


그는 책을 쓰기 전엔 공예와 예술이 제작자 개인에게서 생겨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제작자를 사회의 연장선이자 큰 유기체 안에 포함된 하나의 세포로 본다고 했다.



제작자의 아이디어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정도에 따라 그것은 개인에게서 개인에게로 전달되며 작자가 잠재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하고 그 시류는 다시 제작자나 다음 세대의 제작자가 새롭게 써야 할 새로운 문화적 정설로 돌아온다.



이 구절이 인상 깊다.

창조는 고립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깨달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무를 깎고,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

혼자 시작한 일이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파격적인 장소였던 '앤더슨 목장 예술 센터'


미국 서부 로키산맥에 자리한 목장.

통나무 오두막과 헛간이 있는 평범해 보이는 이곳은 1981년 목공, 도자기, 그림, 직물, 사진 워크숍이 열린 '앤더슨 목장 예술센터'이다.



앤더슨 목장 예술 센터에서 위시본 의자를 만들고 있는 아서 카펜터 (1981년) 사진출처_google


말루프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가구 제작자 존 나이퀴스트, 아서 카펜터와 같은 교수진의 수업도 있었다.

비단 작업 교육뿐만 아니라 예술가가 창조를 향한 열정으로 자신에게 몰두하는 일과 생계를 해결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일,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가르침도 있었다.


앤더슨 목장 예술센터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임시 공동체였다.

창조적인 작업에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 정체성을 탐구하고 독창적인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사람들.

그곳은 기술을 배우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삶의 태도를 나누는 자리였다.



가구 제작자로서 내 미적 목표를 표현하고자 사용한 진실성, 간소함, 품위 같은 단어들이 공예를 하며 내가 되고 싶었던 한 사람을 묘사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나의 가치관이 명료해졌다.
내 목표가 특정 가치를 표방하는 가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오히려 내 안에서 이와 같은 자질을 기르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가구 제작자로서 그가 사용했던 단어들.

진실성, 감소함, 품위


인간을 창조적인 작업으로 이끄는 동기는 자기 변화라는 고백에서 나는 잠시 멈추었다.



결국,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이 책을 덮으며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왜 만드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장인의 공부는 기술의 공부가 아니라, 존재의 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