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만 꺼내보는 생각들이 있다

낮에는 접어두었던 마음에 대하여

by 쉼표


새벽은 이상한 시간이다.

아직 어둡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창밖은 고요하고, 집 안도 조용하다. 세상이 잠들어 있는 시간. 그 틈에 나만 깨어 있다는 감각이 묘하게 선명하다. 낮에는 멀쩡하던 생각들이 이 시간만 되면 고개를 든다. 애써 밀어두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돌아온다.

낮에는 바쁘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 떠올라도 깊이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잠깐 스쳤다가 사라지고, 다른 일에 묻힌다. 그래서 낮의 나는 대체로 괜찮아 보인다. 정리된 사람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새벽이 되면 낮에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숨겨뒀던 게 아니라, 볼 여유가 없었던 것들.

새벽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체로 솔직하다. 변명도 없고, 꾸밈도 없다.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으니 포장할 필요가 없다. 낮에 쓰면 너무 과장될 말들이, 새벽에는 담담해진다. 감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적당한 거리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의 생각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새벽에 떠오른 문장은 새벽에 써야 제 온도를 유지한다.

잠들기 전, 혹은 잠에서 깨어난 직후. 그 애매한 틈에서 나는 나를 가장 정확하게 만난다. 낮의 나는 역할 속에 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맡은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새벽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한 사람. 그 상태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잘하고 있는지. 어디쯤 와 있는지. 무엇을 아직 놓지 못했는지.

대답은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새벽의 질문들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이 생각들은 아침이 되면 희미해진다. 해가 뜨고, 일상이 시작되면 새벽에 떠올랐던 문장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분명히 중요한 생각이었는데, 낮이 되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글로 남긴다.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 새벽의 온도 그대로 적어두지 않으면, 그 생각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새벽에만 꺼내보는 생각들이 있다는 건,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낮에는 무뎌졌다고 느꼈던 감각이, 이 시간에는 다시 선명해진다. 아직 느끼고 있구나. 아직 묻고 있구나. 그 확인이, 나를 다시 하루로 데려간다.

오늘도 새벽에 눈을 떴다. 그리고 또, 무언가를 쓴다.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