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 필요했다

by 쉼표


하루가 끝나면 늘 무언가를 설명해야 했다.

오늘 뭐 했어, 왜 그랬어, 어떻게 됐어. 질문은 자연스럽게 찾아왔고, 나는 대답해야 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무관심해 보이거나, 숨기는 게 있어 보이거나,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설명했다.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했고, 결과는 이랬다고. 말로 정리해야 하루가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날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기운이 없었다. 아무 이유 없이 지쳤다. 말하고 싶지 않았고, 정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날, 누군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버거웠다. 설명하려면 내가 먼저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말하겠는가.

모든 하루가 설명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어떤 밤은 그저 그대로 지나가도 된다. 이유 없이 지쳐도, 말없이 조용해져도 괜찮은 밤. 왜 그런지 묻지 않아도 되고, 대답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나는 그런 밤을 필요로 했다.

이해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상대가 걱정할까 봐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 자신에게조차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왜 이렇게 느끼는지,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질문들을 잠시 내려놓아도 되는 밤.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책임한 건 아니다. 세상은 늘 이유를 요구하고, 답을 기다리고, 정리된 말을 원한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설명 가능한 건 아니다. 어떤 마음은 말로 만드는 순간 모양이 달라진다. 억지로 이유를 붙이면 진짜 감정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때로는 설명하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 된다.

그런 밤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무언가를 해결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조용히 앉아 있거나, 창밖을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는다. 생산적이지 않고, 의미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나를 회복시킨다. 설명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인다.

오늘 밤은 그런 밤이었으면 한다.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 나 자신에게도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 그냥 이대로, 조용히 지나가도 괜찮은 밤.

그런 밤이 가끔은 필요하다. 아니, 자주 필요하다.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