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왜 이러지. 무슨 일이 있었나. 어제 누가 뭐라고 했나. 머릿속을 뒤져보지만 뚜렷한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마음이 가라앉아 있다. 몸은 멀쩡한데 어딘가 무겁다. 설명할 수 없는 날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날은 작은 것에도 쉽게 흔들린다. 평소라면 그냥 넘길 말 한마디가 오래 남는다. 별것 아닌 실수에 괜히 자책하게 되고, 아무 의미 없는 눈빛에도 신경이 쓰인다. 예민해졌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예민해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그런 날이다. 이유 없이 마음이 얇아지는 날.
그런 날의 나는 유난히 조용하다. 말이 줄어든다. 농담에도 잘 웃지 않게 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게 평소보다 힘들다. 괜찮아 보이려고 애쓰지만, 그 애씀 자체가 피곤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지만, 이미 조금은 무너져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에서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날이 오면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인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으니까.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그걸 찾아내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뒤져봤다.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누가 나를 힘들게 했는지. 하지만 끝내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그게 더 힘들었다. 이유가 있으면 최소한 붙잡을 게 있다. 이래서 힘들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유가 없으면 나 자신조차 납득이 되지 않는다. 왜 이러는 거지, 뭐가 문제지,라는 질문만 맴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혼자 감당해야 한다. 누구에게 말해도 이해받기 어렵다.
이유 없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감정에는 늘 원인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무거움이 찾아오는 날도 있다. 그게 나약한 게 아니다. 그냥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오늘은 이유를 찾지 않기로 했다. 왜 이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오늘은 이런 날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너무 애쓰지 않기로 했다. 조금 무너져도 괜찮다. 내일은 다를 수 있으니까.
이유가 없어서 더 힘든 날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없어도, 그 감정은 진짜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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