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숫자를 보면 쉽게 결론을 내린다.
890에서 37.
누가 봐도
무너진 숫자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떠난 공장.
줄어든 인원.
끝을 향해 가는 조직.
보통은 그렇게 읽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읽지 않는다.
나는 이 숫자를 볼 때
전혀 다른 장면이 떠오른다.
재봉틀 소리가 쉼 없이 울리던 공장.
라인마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던 작업대.
890명이 함께 움직이던 시절의 공기.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떠났다.
어떤 사람은 포기했고
어떤 사람은 등을 돌렸고
어떤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공장은 몇 번이나 흔들렸다.
라인이 멈춘 날도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있던 날도 있었다.
이제 끝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공장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버텼다.
그리고 또 버텼다.
어떤 날은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싸움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남은 숫자를 다시 세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숫자를 보면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숫자가 어떤 숫자인지.
이건 무너진 숫자가 아니다.
이건
끝까지 남아 있는 숫자다.
모두가 떠난 뒤에도
자리를 지킨 사람들.
조용히 앉아
다시 재봉틀을 움직인 사람들.
라인이 다시 살아나는 소리를
함께 들은 사람들.
그래서 나는 이 숫자를
다르게 읽는다.
890에서 37까지.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는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날 공장에는
37명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재봉틀을 움직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by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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