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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열은 세계 최고, 경쟁력은 하위

- 인본주의적 창의교육의 미래한국 

OECD '교육 수준의 산출물' 평가


대한민국이 오늘의 위상을 확보한 것은 분명 교육의 힘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OECD에서도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교육에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1996년 선진국 클럽이라 일컫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도널드 존스턴은 “한강의 기적은 한국 국민들의 ‘교육 수준의 산출물’이라고까지 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열과 교육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현대 교육의 불모지에서 교육의 기반을 단기간 내 닦아 전후 압축성장의 핵심 요인이 된 것은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 후 교육이 계속 획일화된 주입식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이 기초학력의 수준은 높였지만 창의력의 배양 관점에서는 미흡했다.  


국가에서도 교육의 기본 정책을 ‘학업성취도’에 맞추고 있다. 곧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평가하는 ‘시험’에 역점을 둔다. 교육의 성과를 학습 결과의 점수로 산정해 서열화한다는 자체가 창의성을 길러주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일정한 기초학력 점수를 받지 못해 중도에 공부를 포기하는 ‘공포자’와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가 나온다. 한국의 기초 학력이 떨어져 학생의 10%가 수포자라는 통계를 교육당국이 공표를 한다. 


이는 교육의 방향성이 잘못된 것이다. 학업의 성적이 학생의 소양을 가름하고 나아가 인간의 가치를 재단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나름 각자의 소질과 재능과 잠재력이 있는 법이다. 한 학생의 소중한 인격체가 학업의 산술적 계량화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될 일이다.  


IMD '한국 대학 경쟁력 국제비교'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세계경쟁력보고서를 인용해 ‘한국 대학 경쟁력 국제비교’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육경쟁력은 국가경쟁력에 비해 뒤져있어 대학교육 중심으로 교육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해 IMD 조사에서 한국 대학교육 경쟁력은 64개국 중 47위로 하위권에 들었다.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인 영국 QS와 상해교통대학이 실시한 세계 대학 종합순위 조사에서 300위 내에 든 한국 대학은 9곳에 불과했다. 특히 대학의 우수논문 생산 실적과 연구 영향력에서 대학 진학률이 낮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다.  


선진국의 대학 진학률이 40~60%대인데 비해 80%에 가까운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 대학의 질적 수준은 하위권을 이룬다니 아이러니컬하다. 한국의 교육열을 치하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은 대학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로 꼽힌다. 


세계 300개 대학권에 59곳이 들었으며 논문 생산량 기준에서는 98곳(한국은 5곳)으로 단연 1위다. 최고 권위의 노벨상과 필즈상을 수상한 연구업적 보유 미국 대학은 각각 82곳, 58곳이었으나 한국 대학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처럼 선진국의 교육성과가 좋게 나타나는 것은 창의적 중심의 인본주의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단순히 지식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과 과정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비추어 학생이 타율적 학습의 강제가 아닌 자율적 선택의 기회를 준다. 


창의적이고 인본주의적 교육의 표본으로 유대인의 학습법을 든다. 핀란드 헬싱키 대학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0.1%도 안 되는 유대인의 IQ는 95라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106이다. 


유대인의 특별한 하브루타 교육법


인구 규모도 작고 지능지수도 낮은 유대인이지만 그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고금을 통해 각 분야의 인재나 시쳇말로 세상의 ‘인플루엔서’는 유대인들이었다. 프로이트,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에디슨을 비롯해 현대에 와서도 그들은 세상을 좌우하는 놀라운 역량을 발휘했다. 20세기 최고 부자였던 록펠러, 퓰리처상을 만든 조지프 퓰리처,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 전설의 앵커 래리 킹,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유대인이다.


그뿐인가. 컴퓨터의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래리 페이지,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스타벅스의 하월드 슐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단한 인재들이 각계에 포진해 있다.


우수한 민족으로 일컬어지는 유대인들의 배경에는 특별한 교육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브루타라는 교육방식이다. 그들은 아이들이 철이 드는 시점부터 가정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며 해법을 찾아내는 훈련으로 창의력을 연마시킨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유대인의 격언은 바로 그들의 교육이 어떤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은 어릴 적부터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내재화되어 있다.


자율성과 창조성 바탕으로 이뤄지는 교육이어야 사회적 협동정신과 조화력을 같이 기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육의 열정은 강하지만 현재의 도식화된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은 혁신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 선진국과 같은 내실 있는 교육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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