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었던 달 음모론
'헬스장'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지은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와 한국어가 버무려진 이 기이한 합성어 덕분에 헬스장은 모두에게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으니까. 헬스장의 자유로움을 높은 확률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은 평일 저녁, 사람들은 하나둘씩 헬스장으로 모여 본인의 '헬스(건강)'를 챙기기 위해 저마다의 운동을 시작한다. 나처럼 근육을 키우기 위해 무거운 바벨을 들며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오늘 먹은 저녁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러닝머신에서만 1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쪽 구석에서 매트를 펴고 1시간 동안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정신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곤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장이 아닌 '헬스'장이기에 이곳에서의 모든 운동에 정답이란 건 없지만 종종 헬스장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건 바로 다칠 우려가 있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저렇게 운동하면 허리에 무리가 가서 오래 운동하지 못할 텐데...'
'윽... 무릎 다 상하겠다. 저러다 다치면 어떡하지...?'
저마다의 결심을 하고 들어선 헬스장이겠지만, 옳지 않은 방식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자세를 고쳐줄 만한 용기가 생긴 적은 없다. 하지만 늘 속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넘쳐난다. 헬스장에서 어떤 운동을 하든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오답은 있다. 다치며 운동하는 게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모두가 올바르게 운동하며 건강한 생활을 누리길 누구보다 바란다.
“그 사건 이후로 미국은 달에 외계인이 산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어. 소름 돋지?”
“와… 나 지금 온몸에 닭살 돋았어”
중학교 2학년. 한 시라도 눈을 떼면 산책 안 한 비글보다 더 난리 칠 듯한 아이들의 수학여행은 꽤나 건전했다. 취침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까지 둥글게 모여 앉아 떠드는 그들의 토론 주제는 ‘미국의 달 착륙‘ 이야기. 천문학자가 꿈이었던 내 친구 원준은 비장한 말투로 우리들에게 달 이야기를 시작했고,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동그래지며 그의 말에 점점 빠져드는 중이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소련보다 먼저 달에 인간을 보낸 미국,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마주한다. 인간의 것이 아닌 어떠한 구조물이 이미 달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당황스러운 탐사 결과에 NASA는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달의 '동주기 자전'을 떠올렸다. '동주기 자전'이란 달이 스스로 한 바퀴를 도는 데에 걸리는 시간(자전 주기)이, 지구 주변을 도는 데에 걸리는 시간(공전 주기)과 같다는 뜻이다. 때문에 지구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달의 뒷면을 볼 수가 없다. 반대로 말하면 달은 우리에게 항상 앞면만 보여주고 있다는 뜻. 달의 동주기 자전에 대한 비밀을 풀지 못한 미국은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달은 외계의 무언가가 지구를 감시하기 위한 '인공 구조물'이라고.
"... 이상하지? 너희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달의 다른 면을 본 적 있어? 아마 없을 걸. 기억을 잘 더듬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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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끄덕)
그렇게 원준의 우주 미스터리 이야기는 밤새 이어졌고, 말도 안 되는 그 달 탐사 음모론을 나는 어리석게도 무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믿었다.
미국의 아폴로 계획은 우주 관련 음모론에선 단골손님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음모론은 '미국은 실제로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 모든 것이 조작되었고, 증거로 남아있는 사진들은 모두 지구에서 촬영한 사진이라고 말한다. 달에는 대기가 없어 성조기가 올바르게 서있을 수가 없다고? NASA는 곧게 서있는 성조기를 위해 일부러 ㄱ자로 된 깃대를 사용했다. 검은 밤하늘에 왜 별이 보이지 않느냐고? 그들은 수월한 임무 수행을 위해 낮에 활동했다. 지구에서도 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달에서도 낮에는 별을 보기가 쉽지 않다. 또한 밤하늘의 별들을 사진 속에 담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 노출을 주고 촬영해야만 밤하늘의 작은 별들까지 담을 수가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음모론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해결되는 물음으로 이루어져있다.
내가 당한 음모론 역시도 마찬가지다. 중학생에겐 꽤나 신기한 '동주기 자전'이란 현상 때문에 된통 당하고 말았지만, 동주기 자전은 우주에서 꽤나 흔한 현상이다. 위성이 오래도록 행성 주변을 돌게 되면 행성의 중력으로 인해 자연스레 동주기 자전을 하게 된다. 지구의 달뿐만이 아니라 태양계의 거의 모든 위성들이 동주기 자전을 한다. 달이 외계의 무언가가 지구를 감시하기 위한 '인공 구조물'이라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태양계의 모든 위성들 역시도 '인공 구조물'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우주와 관련한 음모론은 사라지질 않는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음모론이 등장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천문학은 일반 사람들에겐 워낙 생소하고 신기한 학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종종 아이들도 나를 찾아와 내가 당했던 음모론을 가져와 물어보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답해주는 편이다. 미스터리한 우주를 상상하는 아이들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헬스장에 가서 자유롭게 운동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다만 그곳에서 옳지 않게 운동하는 것, 다칠 위험이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은 꼭 바로잡길 바란다. 천문학도 운동도, 우리 모두 올바르게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