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는 법
본디 길치란 이 방향이 아닌 걸 알면서도 걸음을 멈출 수 없는 본능의 소유자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을 거라는 무한한 긍정 의식에 사로잡혀있다. 요즘이야 휴대전화를 이용해 방향을 잡기가 수월해졌지만, 그것도 두 다리가 언제든 방향을 틀 수 있어 유효한 것이다. 고로 자동차는 하차 벨을 누를 수 없는 도로 위의 무법자다. 바퀴 달린 짐승과 거리 두기를 실천한 자신이 자랑스러웠건만, 결국은 면허를 따야 할 날이 오고야 말았다.
우리 차가 생긴 건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이었다. 남편은 승선 전에 신청한 차를 출산 예정일 한 달 전에 하선하며 받았다. 연한 크림색의 차량은 적당한 크기에 연비가 좋았다. 출산 후에는 쓸 일이 많을 거라는 그의 장담은 사실이었다. 장거리 여행을 갈 때, 시댁을 방문할 때, 남편이 인천으로 올라갔을 때도 쉼 없이 바퀴를 굴려 우리를 먼 곳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그런 자동차가 동면에 들 때가 있었으니,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였다. 차가운 주차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고철 신세가 가끔은 딱해 보였다. 자동차 배터리 소생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주차장에 내려가 시동을 켰다. 덜덜거리는 시트에 앉아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기력이 빨렸다.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가면 어쩌지?’란 망상에 아랫배가 저릿했다. 잘 훈련된 원숭이처럼 요리조리 피하던 면허 생활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현실에 부딪혔다.
끌려가다시피 도착한 운전면허장에서 필기는 한 방에, 기능시험은 세 번 만에, 도로 주행은 한번 만에 합격했다. 태극무늬가 반짝이는 면허증을 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자동차라는 흉기를 타고 도로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일 뿐이었다. CCTV를 켜둔 방에 잠든 아이를 두고 밤거리를 달리며 운전 연습을 시작했다. 주황색 전등 밑으로 흔들리는 차선이 꼭 내 마음 같았다.
“잘하네. 소질 있어.”
남편은 안전띠를 꼭 쥐고 전방을 주시했다. 속으로 어떤 신에게 기도를 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긴 했다. 위태로운 운전 연수가 2개월로 끝이 나고 남편은 다시 한번 바다로 떠났다. (연수 기간의 치열한 다툼은 기억을 잃은 걸로 하겠다.) 온전히 내 몫이 된 자동차를 타고 아들과 나는 어디든 달려갔다. 원래 버스를 타고도 못 가는 곳이 없었다. 우리는 물 만난 거북이처럼 도로를 헤엄쳤다.
평생 못할 거로 생각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큰 기쁨이었다. 지리가 익숙해질수록 신세계가 펼쳐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버스를 타고 다닐 때보다 더 부지런해져야만 했다. 주차 자리가 없을까 봐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집을 나섰기 때문이다. 차를 댈 곳이 없으면 엄마 잃은 아이처럼 불안이 솟구쳤다. 늦는 것보단 이른 게 나았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 넉넉한 빈자리를 사수했다.
한국에서 가장 운전 난도가 높다는 부산이다. 시간과 실력은 비례해서 쌓였다. 양쪽으로 이어진 불법주차 사이로 맞은편 차량을 마주하면 침을 꿀꺽 삼켰다. 보통은 내 안색을 살펴보고 기꺼이 길을 양보해 주었다. 연차가 쌓이자, 그동안의 은혜를 갚기로 했다. 삼복도로를 오르는 꼬불꼬불한 길도, 고소공포증으로 도로 중간에서 하차한 사람이 있는 걸로 유명한 부산항대교 진입로도 무사통과했다. “이 정도면 베스트 드라이버지.”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이 쌓여도 평행주차는 여전히 어려웠다. 차 두 대만 댈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의 주차장을 빠져나오다가 그만 뒷범퍼를 긁고 말았다.
‘이.. 이걸 어떻게 숨기지.’
진득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배를 타고 있는 남편에게 숨길 생각부터 들었다. 친구에게 수리에 드는 비용을 문의하고 답변을 기다렸다. 많이 비싸면 어떡하지. 깍지를 낀 두 손이 연속해서 테이블을 두드렸다.
“심하게 긁혔네. 남편한테 물어보니까 백만 원 넘게 들 것 같다는데... 어떡하면 좋니.”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천둥이 쳤다. 몇십만 원이면 몰라도 백만 원을 비밀로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암담한 심정으로 이번에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잘 아는 정비소를 소개받았다. 정비 기사 아저씨에게 흠집을 내보이는 시간이 천근 같았다. 차체를 유심히 살펴본 아저씨가 툭 하고 말을 던졌다.
“15만 원이요.”
네에??
햇볕에 그을린 수리공 아저씨의 얼굴이 백전노장의 장군처럼 보였다. 키를 맡기며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걸로 되었다. 진실을 아는 나에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에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이틀 후 돌려받은 차는 마치 새 차처럼 반짝였다. 완벽한 뒤처리였다.
하선한 남편은 운전대를 돌리는 나의 손놀림에 대단하다며 엄지를 내밀었다. 참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슬슬 올라가는 입꼬리를 꾹 내리눌렀다. 프로처럼 주차하고 길을 걷는데 뒤에서 아들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엄마, 한 번 박은 적 있잖..”
옆구리를 찌르고 기밀 유지를 위해 제공한 떡볶이를 상기시켰다. 싸늘한 눈빛 공격이 통했는지 아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히히 웃어 마음이 졸였다. 슬쩍 남편의 기색을 살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에 땀이 찬 두 손을 비볐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진짜 못 들었는지. 이건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여러 번의 항차를 끝내고 남편은 차를 바꿨다. 차량용 액세서리에 빠졌다는 바로 그 차다. 신차는 크기가 커졌을 뿐 아니라 내부도 근사했다. 360도 올 라운드 뷰는 물론, 운전자에 따른 자동 좌석 조절, 통풍 시트와 넓은 터치패널까지. 남편이 새 차에 홀딱 빠진 건 당연한 이치였다.
차를 바꿔서 두근대는 마음은 같았지만, 덩치가 커진 만큼 두려움도 컸다. 혹시나 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운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편도 딱히 운전대를 넘겨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동안 테스트다, 어쩌다 신나게 끌고 다니더니 승선일이 다가오자 마지못해 운전석을 넘겼다.
“알았지? 세차는 꼭 한 달에 두 번, 노터치 세차로 해줘. 부탁할게.”
대형 걸레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존 세차장은 차에 미세한 흠집을 남긴다나, 뭐라나. 강력한 압력으로 물을 분사하는 노- 터치 세차장을 강조하는 그의 얼굴에 NO를 외쳤다. 남편은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남겨두고 떠나는 심정으로 차키를 맡겼다. 소중하게 다루겠다고, 나만 믿으라고 끄덕인 고개 밑에는 음흉한 미소가 숨어있었다.
이 차는 이제 내 거다.
몇 개월의 항해가 끝나고 돌아오면 신차는 더 이상 신차가 아닐 터였다. 안타까운 현실에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도 새 차에 대한 집착을 끝내줘서 고마웠다. 이 은혜는 실력으로 갚을 테니 안심하길 바란다. 다행히 지금까지 사고는 나지 않았다. 헌 차는 여전히 새 차처럼 빛이 난다. 그가 들었다면 안심할 소식이다. 나도 따라 가슴을 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