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와 바다의 전투

각자의 전쟁

by 유영해

층간소음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다. 보통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한다면 윗집이 시끄러워 살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예민한 아랫집을 만나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일평생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는 신조로 살아왔는데. 삶의 근간이 흔들렸다. 심히 억울하다는 말이다.


아랫집 아주머니의 방문은 느닷없었다. 그전까지는 아랫집의 존재를 알면서도 알지 못했다. 요즘 말로 이웃이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어색한 존재일 뿐이다. 인터넷에 넘치는 이웃 관련 괴담과 미담에 울고 웃으면서도 그 얘기가 내 얘기가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왜 그렇게 쿵쿵거려요?”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추궁에 죄송하다고 말하기에는 집에는 달랑 나와 아이 둘 뿐이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을 뿐인데 이게 뭔 소리일까. ‘다른 집에서 난 소음을 우리가 낸 거라고 오해하신 거겠지’라고 가볍게 넘기려던 분쟁은 장장 2년 동안 이어졌다.


남편이 집에 없다고 불편한 적은 없었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더욱 그랬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적인 부분만 제외한다면 여유로운 살림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외부로부터의 침략은 정신을 갉아먹었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환청과 피해망상을 꾹 눌러 담았다. 남편한테 뭐라도 상담했다면 상황은 나아졌을까. 하지만 바다에서 고독과 싸우는 그에게 속내를 털어놓기는 쉽지 않았다. 도움이 불가능했기에 더욱 그랬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점점 피폐해지는 자신을 붙잡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며 모든 것에서 손을 놓은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흐물흐물해진 정체성마저 찾을 수 있었다. 아랫집 미친 여자가 실은 귀인이었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도 아래에 사는 그분을 요즘은 통 보지 못했다. 글을 쓰며 퍼부은 원념이 아랫집으로 가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처럼 육지에 있는 일은 육지인이 처리하는 법이었다. ‘차라리 바다 위에서 살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예쁜 공원을 발견하면 하차벨을 누르고 산책할 수 있는 삶. 최근, 그 삶의 소중함을 남편한테 배웠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이다.


하선한 남편은 분노에 차 있었다. 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둘이 눈이 맞아 (한 명은 유부남이었다.) 애틋한 영화 한 편을 찍은 모양이었다. 남의 애정사, 눈을 돌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옆방이라 그러지도 못했다. 철판 한 장을 통과한 낯 뜨거운 소리에 남편은 쫓겨나듯 거실 소파에서 밤을 보냈다.


몇 개월을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바른길(?)로 인도하려던 그의 노력은 둘 사이의 장렬한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 몹쓸 사랑은 더욱 깊게 불타올랐고, 남편은 정수리에 흰 머리카락을 잔뜩 달고서야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탈탈 털린 정신머리를 부여잡고 지나간 기억에 괴로워하는 남편의 모습은 실로 안타까웠다. 어째서 전화로든, 메신저로든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가 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지금 생각하면 두 사람한테 가스라이팅이라도 당한 것 같아. 공간이 좁으니까 제대로 된 판단이 안 됐다고 해야 하나? 육지를 밟고 나니까, 네가 내 옆에 있으니까 점점 머리가 맑아져. 솔직히 걱정 끼치기도 싫었고 말이야.”


하. 육지의 짐을 얹지 않아도 바다의 삶은 녹아있는 소금의 양만큼 충분히 무거웠다. 남편을 괴롭힌 연놈들을 찾아가 망신을 주고 싶은 마음이 반, 왜 미련하게 혼자서 참았는지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반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다 잊어버리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거였다. 어째서 선량한 사람은 항상 피해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 바디필로우를 껴안고 아기처럼 잠든 남편의 등을 토닥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차올랐다.


남편은 사람들과 친해지면 간이며 쓸개며 내줄 것처럼 굴었다. 나를 자극하는 포인트였다. 조곤조곤 조언도 해 보고 정신 차려라, 화도 내봤지만 소용없었다. 긴 결혼생활 동안 깨달은 건 사람은 바꿀 수 없다는 거였다. 나 또한 완벽하지 않으니 이해하기로 했다. 다정한 그에게 천천히 스며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은 쉽지 않았다. 가끔 이런 일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어두운 새벽, 잠들지 못하는 그를 데리고 집 앞 공원을 걸었다. 위로와 공감, 해결 방안의 제시를 넘어 결국은 딱딱한 충고가 입에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너. 다시는 사람 보는 눈 정확하다는 말, 하지 마.”

“그러게... 이제는 배 타면 사람들이랑 적당히 거리 두며 지내려고. 일부러 친해지려고 노력 안 할 거야.”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가슴 한편이 시큰했다. 그의 대답은 내가 기다리던 정답이었음에도 소나기처럼 내리는 빨간 빗금 같았다. 아니, 애당초 인간관계에 정답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넓은 들판을 채운 코스모스가 바람에 이리저리로 흔들렸다.


결국은 육지에서도, 바다에서도 중요한 건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을 따라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그들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혼자가 힘들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게 우리가 가족의 일원이 되고 나아가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헤어져 있으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우리는 상냥하고 싶어서 서로의 아픔을 감췄다. 이런 배려가 없었다면 떨어진 시간을 견디는 게 배로 힘들었겠지. 내가 겪은 고통을 상대가 모르길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무슨 일을 겪어도 결국은 돌아올 집이 있고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뱃사람에게도, 육지인에게도 가장 필요한 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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