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의미

새해 첫날

by 유영해

철창을 자르는 소리가 났다. 방범창을 넘으려던 도둑이 어린 나를 발견하곤 도망가려던 발길을 멈췄다. 뻣뻣하게 굳은 몸에 소름이 일었다. 가위눌린 입술이 힘겹게 벌어졌다.


“엄마...!”


억눌린 비명에 놀라 눈을 떴다. 어슴푸레한 천장이 코앞까지 내려왔다. 극세사 이불의 촉감으로 현실을 깨달았다. 한껏 오므린 발치에서 굴러간 아들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남편은 어디 갔는지 옆자리가 비었다. 거실에서 혼자만의 축배를 드는 모양이군. 뻑뻑한 눈을 비볐다. 새해 첫날의 아침을 그렇게 맞이했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밤잠이고 낮잠이고 쉬 잠들고 쉬 깬다. 남편과는 정반대다. 체질만 따지자면 내가 배를 타야 했다. 요즘 그는 군살을 뺀답시고 아침과 점심을 굶고, 저녁과 야식을 정성스레 차려 먹었다. 아내 몰래 마시는 새벽의 위스키 한 잔에도 맛을 들였다. 출항을 앞둔 사람처럼 생활이 점점 기울고 있었다. 나가서 뒷덜미를 잡아 올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둠에 눈이 감겼다.


출발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나갈 준비를 마친 뒤에는 해몽부터 찾았다. ‘오래 쌓인 스트레스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안 좋은 말은 재빨리 넘겼다. ‘걱정하던 일이 손해 없이 지나간다.’, ‘예상치 못한 경로로 일이 들어온다.’ 그래, 이게 좋겠군. 얼렁뚱땅 해석을 마치고도 찜찜한 마음에 검색을 반복했다.


남편이 뭘 그렇게 보냐며 휴대전화를 낚아챘다. 나는 아침에 꿈 얘기를 하면 재수가 없다는 미신을 지금도 믿는 편이다. 속사정을 들켰다는 생각에 왠지 부끄럽고 조금 짜증이 났다. 별다른 말 없이 운전석에 앉는 모습이 찝찝했다. 차가운 조수석에 몸을 욱여넣고 발을 동동거렸다. 혼자만의 새벽 시간은 달콤했냐. 막 입을 열어 시비를 걸려는데 건네받은 텀블러에서 밀크티 냄새가 났다. 흥. 고맙기도 해라. 핸들에도 마음에도 열선이 켜졌다. 부드러운 운전대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엄마, 나 눈 내리는 꿈을 꿨어요.”


사정을 모르는 아이가 뒷자리에서 꿈 얘기를 꺼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부산에서는 어지간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다. 싸락눈만 내려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이는 꿈이 진짜인 줄 알았다며 실망한 마음을 토로했다. 아아, 그랬구나. 나는 입술로만 답하고 손가락을 놀렸다. 길몽이라는 검색 결과에 마음을 쓸어내렸다. 새해 아침부터 어지러운 마음이 도로 위를 굴러다녔다.


해가 뜰 때까지 두 시간 반이 남아있었다. 재작년까지는 달맞이로 신년을 맞이했다. 밤하늘에 뜬 달은 연도를 넘나들며 제자리를 지켰다. ‘매일 뜨는 태양을 뭐 하러 바닷가까지 가서 보냐.’라고 생각했었다. 작년에야 생애 처음으로 일출을 구경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은 층을 이룬 라테처럼 근사했다. 가족이 함께 빌던 소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음성, 뜨끈했던 돼지국밥과 평온했던 낮잠. 어제 일처럼 또렷한 해돋이가 다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이번에는 가덕도로 가자며 차를 몰았다. 새해 꼭 들어야 할 노래 리스트를 재생하자 희망찬 노래가 쏟아졌다. 초행길은 무서웠지만, 남편이 있으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우리는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아 신이 났다.


“우리 이제 결혼 17년 차야.”


남편의 음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가 어렸을 때를 떠올렸다. 잠든 아들을 태우고 달리던 한밤중 장거리 운전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고달팠다. 추억이 가덕대교를 건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대형 선박들이 부표처럼 빛을 냈다. 새삼 배를 타는 남편이 고마웠다. 휴가 기간이 아니었다면 너도 지금쯤 저 안에서 엔진을 고치고 있겠지. 떠오르는 해를 볼 겨를도 없이 커튼 친 잠자리에 드는 남편을 상상했다.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코끝이 찡했다.


이른 새벽 주차장은 한산했다. 핫팩을 챙겨서 해안가로 향했다. 어두운 밤길이 짙은 주황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옹기종기 짝을 지은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우리는 명당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각자의 소원을 정하고 동트기 전 기념사진을 찍었다.


“못생겼네.”

“아빠도.”


부자가 빨갛게 튼 서로의 볼을 경쟁하듯 문질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출은 한순간이었다. 잘 익은 노른자가 푸른 접시에 담겼다. 여기저기서 함성을 터트렸다. 검푸른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문득 왜 그렇게 해몽에 매달렸는지 깨달았다. 그건 헛되이 보낸 지난해가 아쉬워서였다. 다가온 새해는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했으면 했다.


그런데 완벽이란 무엇인가. 일출을 바라보는 남편과 아이의 뒷모습이 다정했다. 돌이켜보면 추억은 대부분 그리움을 동반했다. 같은 방향을 보고 서 있는 뒷모습에 흠이라곤 없었다. 금빛 테두리가 세 사람을 둘러쌌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한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등을 묵묵히 따라갔다. 떨어지지 않도록 움켜쥔 양손이 든든했다. 팔팔 끓는 뚝배기 속 아침을 먹고 서로의 등을 보며 낮잠을 자야겠다. 일어나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른 저녁을 준비해야지. 마주 보는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해의 잔상이 가족들 위로 함박눈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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