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 영감
“으음. 초콜릿 향이 나.”
잘록한 술잔이 한 손에 감겼다. 컵에 담긴 액체가 우아한 손놀림에 빙그르르 회전했다. 유리병을 녹인듯한 갈색 술은 형광등 아래서 투명함을 더했다. 푸른색 빈백에 기댄 사내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지금 뭐 하니?”
뒤돌아본 얼굴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이리 와서 향기를 좀 맡아보라며, 허공에 술잔을 들이밀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안방 문을 소리 죽여 닫았다. 브라운 치즈를 베어 문 남편의 탄성이 새벽 두 시의 거실을 가로질렀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을까. 시작은 그가 자처한 금연이었다.
배에서 내리고 처음으로 떠난 여행지는 오키나와였다. 렌터카를 타고 자연과 한 몸이 되어 떠돈 공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여행 삼 일째, 청록색 바다를 바라보던 그가 아련한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담배나 끊어볼까?”
담배는 ‘나’를 붙일 만큼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일평생 건강염려증을 업으로 삼은 우리 아버지도 담배만은 끊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대견한 발언을 흘려버릴 정도로 남편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대찬성이라며 환호하는 내 얼굴을 보고 남편은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연을 시작했으면 확성기를 켜야 했다. 옆에 있는 아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우리 집에서는 ‘해피하고 올게.’라는 말이 담배 피우러 간다는 뜻이다. 어디서 구르다 온 말인지 모르겠다. 피는 당사자만 행복한 이 시간을 아들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싫어했다. 오죽하면 해피타임이란 제목의 동시를 짓고 그 시로 노래를 만들어 상금까지 받았다.
이 정도 정성이면 진작에 성공해야 했을 금연이었다. 아이는 아빠 주머니를 뒤져 나온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늉을 했다. 화장실에 있던 남편이 빛의 속도로 튀어나왔다. 사놓은 것만 다 피우고 금연을 시작하겠다며 유예를 요청했다. 신발장에 숨겨진 담배는 딱 두 갑이었다. 보루로 쟁여둔 담배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외로움을 술과 담배가 아니면 무엇으로 달랠 수 있겠니?”
배에서는 술과 담배가 면세였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았다. 얼마나 마시고 피는지 알 길이 없어, 세금 없이 달래는 외로움을 이해하려 했다. 집에 돌아오면 자제하는 듯 보였으나 마뜩잖았다. 담배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는 아내와 아들은 본체만체하더니 별일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들뜬 내 마음과는 반대로, 담배가 줄어들수록 남편은 마른침을 삼켰다.
억지로 데려간 금연 클리닉에서 그의 무릎이 달달 떨렸다. 니코틴 패치는 붙이면 속이 메스껍다면서 받아온 쇼핑백을 보지도 않고 소파에 던졌다. 이럴 거면 금연은 왜 한다고 했는지.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가는데 순서 없다지만 행복한 노년에 건강은 필수지 않는가. 상상이 팔십 대를 향해 갔다. 머리가 하얗게 센 내가 텅 빈 옆자리를 쓰다듬었다. 영감, 고생만 하다 갔네..
가늘게 이어진 의지는 아들 친구 가족과 다녀온 대만에서 끊어졌다. 여섯 가족을 거느린 대규모 여행이었다. 주동자는 (물론) 남편이었다. 계획이 어그러질 때마다 한숨이 늘었다. 좋은 시간을 만들어준 남편에게 (비록 스스로 판 무덤이지만) 좋은 시간만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딱 한 개비만...”이라고 두 손을 모은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대만은 주류세가 싼 나라였다. 남편은 “담배도 안 피우는데 술은 자유롭게 마시게 해 달라.”며 맛있다는 위스키를, 심혈을 기울여 구매했다. 잠자리에서 수없이 돌려보던 쇼츠는 이제 보니 다 술 정보였다. 사람들을 대동하고 다녀온 쇼핑백에는 크고 작은 술이 빼곡하게 담겨있었다.
집으로 들고 온 토산물 중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긴 위스키는 단연 돋보였다. 남편은 그것을 각 맞춰 정렬했다. 그리고 잠잠했다. 선물용인가 싶어 안심했지만, 착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상한 소포가 도착했다. 조그만 갈색 상자에서 낯설고도 낯익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높이가 다른 유리잔이 여섯 개였다. 정교한 세공이 새겨진 잔이 둘. 항아리처럼 잘록한 잔이 둘. 우리 집 물컵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이건 왜 샀니, 하는 잔이 둘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다란 스푼, 계량컵, 용도를 알 수 없는 마개까지. 에어캡을 푸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금연은 날이 갈수록 느슨해졌다. 한 개비가 두 개비, 세 개비가 된 것 같은데 본인은 끝까지 한 개비라고 우겼다. 금연을 담보로 사 온 술은 종목을 늘려 집은 위스키 공장이 되고 있었다. 혹 때려다 혹 붙이고 온 영감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꺼이꺼이 노래를 불렀다. 차라리 금연을 시키지 말걸.
“그거 알아? 부부 둘 다 술을 좋아하면 사이좋을 확률이 더 높대.”
야밤의 그는 오늘도 찰랑이는 위스키 한 잔을 들어 올리며 나의 취향을 아쉬워할 것이다. 남편이 나를 바꿀 수 없는 만큼, 나 또한 남편을 바꿀 수 없음을 안다. 그저 빨리 이 유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성냥불처럼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성미가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 그때까지는 빈 잔에 물을 넣어 건배는 해주리라. 새벽녘 몰래 따른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살짝 초콜릿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