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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봉기를 일으키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by 유영해


요즘 토닥토닥도 안 해줬잖아!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우리 집 작은 아들 아니, 큰 아들 아니, 남편이 내지른 소리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저런 말을..'이라고 놀라셨는가. 우리 집에서는 흔히 쓰는 어른의 말이다. 일단 이 말의 숨겨진 의미부터 짚고 넘어가자.


'토닥토닥하다.'는 우리 집 은어로 '심기가 불편해지기 전에 알아서 우쭈쭈를 해주다.'는 뜻이다. 도락가인 남편이 혈압을 낮추기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하루 세끼 챙겨 먹는 낙을 한 끼로 줄였다 말이다. 의원의 도움을 받았지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공복 자주 화를 유발했다. 거기서 나온 특단의 대책이 이 토닥토닥이다.


우쭈쭈를 해주는 건 쉽다. 말 그대로 엉덩이를 토닥이거나 안아주며 우쭈쭈를 '말'로만 해줘도 상대는 만족한다. 어려운 건 이것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적절히 실천하는 것이다.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삐진 40살 남자 어른을 상대하는 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남편만 욕할 수는 없는 게 우리 집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힘들다'는 감정표현을 이런 식으로 종종 한다. 이른바 가족끼리만 통하는 귀여운 투정인 셈이다.


40대 남성을 할아버지로 그려내는 쳇 GPT.. 그럼 나는 할머니냐.


2월에 다시 배를 타러 나가는 남편과 아이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1월 한 달은 한참 여행 중이다. 강릉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아이의 주말 도서관 수업을 마치고 그날 밤 바로 경기도로 올라왔다. 얼마 전 동탄으로 이사한 지인 아파트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며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다. 남편의 항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하루에 하나의 글을 써서 올리는 건 시간이 걸려서 여행지에서도 자주 폰을 꺼내 메모를 했다. 밤에는 자는 시간을 쪼개 글을 썼는데 남편은 그게 맘에 안 들었던 거다.


그런 남편이 폭발한 계기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받았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다음 달 초쯤 나갈 수 있으세요? 2월 5일~10일 사이요.


즐거웠던 여행길을 한 방에 망쳐놓은 회사로부터의 연락은 그와 나를 모두 침울하게 만들었다. 남편과 만나고 나서 몇 번이나 듣는 승선 요청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해 관람하는 아이를 쫓는 사이 남편은 입술이 오리처럼 튀어나와 구석에 앉아있었다. 문득 생각이 나 얼굴을 보러 왔더니 화를 내며 하는 소리가 저거였다.


인정한다. 휴가를 나온 그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는 걸. 아이 감기약 챙길 정신은 있으면서 남편 혈압약 챙기기를 게을리한 자신을 반성한다. 대책 없이 매일 글쓰기를 시작해서 함께 하는 여행길에 그를 혼자 둔 것도 사실이다. 삶의 활력을 되찾아준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존재 이유를 논하지 않고 어찌 내 삶이 순탄하게 굴러가길 바라겠는가. 부족한 내 글쓰기가 9일 만에 문을 닫는 이유다.


공지 없이 일주일이나 글을 올리지 않아 독자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죄송한 마음뿐이다. 다만, 문은 열고 닫기 위해 만드는 법. 환기를 위해 종종 브런치에 들를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멀지 않은 어느 날, 글감으로 가득 찬 내 서랍이 회전문을 통해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2월의 어느 날, 돌아오겠습니다.

추운 겨울,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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