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下山)

철학가에서 실존가로

by 승환

우리는 항상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행복을 위해서, 돈을, 미래를 위해서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그것이 우리가 배운 ‘삶의 방식’이다.

노력하지 않는 자는 게으르다는 인식이, 이미 원하는 것을 가져서 노력을 하지 않는 자에겐 오만, 혹은 무식하다는 인식이 생긴다. 요즘은 그런 삶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은 ‘열심히 사는 인간’을 동경한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책을 읽은 사람은 전체의 48.5%였다.
그 중에서도 자기계발서와 에세이가 높은 판매량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역량과 경쟁력을 높이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저자의 경험과 성공담에서 동기를 얻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며 삶의 질을 높이려 한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떨까?


철학서적과 자기계발서의 목표는 같아 보이지만, 그 출발점이 다르다.

자기계발은 “무엇이 나를 더 낫게 만들까?”에서 시작되고,
철학은 “나는 왜 ‘낫다’고 느끼는가?”에서 출발한다.
자기계발은 결과를 향한 운동이라면,
철학은 그 운동의 구조를 해석하려는 시도다.


나는 내가 철학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타인의 생각을 답습하기 싫어서 자기계발서를 읽는 대신 스스로 질문을 줄기차게 던졌을 뿐 이였는데, 그것에 스스로 답을 내다보니 그것이 나의 철학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수년간 닦아온 나의 철학이 다 무슨 소용일까?


여전히 타인과 마찰이 생기고, 생각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불안이 엄습할 때면 여전히 고통스럽다.

아직도 여자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고, 통장에는 무슨 구멍이 뚫린 것인지 줄줄 새는 잔고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대로 살다가 밥이나 제대로 빌어먹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와 하는 선문답을 잠시 멈추려 한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나 자신을 이해하려 한 것이 실수였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한없이 특별한 존재이다. 모든 생각을 알 수 있으며, 행동과 사고방식 또한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이다. 나에게 나의 모든 예의와 매너, 우선순위와 가치관은 정당하며, 존재론적인 층위에서 논할만한 사유가 그것들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철학을 개똥 보듯 여기는 인간들도 존재하며,
그들의 세계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려 한다.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


철학자에서 실존가로 옮겨가는데 어떠한 숭고하고 명예로운 이유는 없다.


산에서 30년동안 면벽수련을 한 초월자가 인간들의 마을에 다시금 발을 들이는 것과 똑같을 것이다.


황량한 대지에 높게 솟은 화려한 첨탑은 아무런 가치도 없음을 인정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