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퇴화

비례하는 관계에 대한 균형

by 승환

요즘 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이게 뭔 새해 댓바람부터 들려오던 뻔한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하루 종일 내 내면을 탐구하고, 내가 사회에서 얻어온 지식들과 내 감각 사이의 괴리를 분해하는 과정에 광인처럼 사로잡혀 있었다. 그 행위를 나는 철학이라 믿었고, 메아리가 되돌아오지 않는 비명을 질러대며 내 정신을 날카롭게 벼려냈다.


그러다가 그 날카로운 정신이 한 번 부러졌다.

공기를 들이켜도 내 폐는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시야는 자꾸만 좁아졌으며, 속은 울렁거리고 메스꺼웠고, 다리는 더 이상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공황, 혹은 과호흡 비슷한 것이 온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의식적으로 내 철학을 멈추었다. 이대로 광인이 되거나, 흔한 정신병에 걸려 내 내면의 중심축을 자발적으로 뒤흔들 수는 없었다. 나 자신을 몰아세워 끝내 무너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점차 사람이 되어갔다. 감정은 가감 없이 표출했고, 꺼끌 거리는 숫돌 같은 질문들이 떠오르면 “뭔 개소리야” 하고 넘어갔으며,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었다.


내가 생각하던 범부가 되어가는 이 느낌은… 마치 도수가 약한 술에 취하는 것 같다.


인지하기 전에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아직 혀와 눈은 멀쩡한 것 같고, 다리에 힘이 풀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인지하기 전까진.

인지를 한 이후부터는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아, 이 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겠구나.’
‘아, 이 회복기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철학을 하지 못하겠구나.’


나는 내 정신이 이리 무뎌진 상태를 ‘퇴화’라고 부른다. 고작 한 달여 만에 이리 무뎌지는 정신머리라면 원래도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싶지만… 앞으로 만들어갈 나의 칼날을 더욱 단단하고 날카롭게 벼리면 된다. 다만 이번엔, 부러지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이렇게 철학에 집착했던 이유는, 내가 성장을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배움과 깨달음을 겪고, 얻다가 가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니 성장만큼 그럴듯한 윤리도 없다. “나는 나아지고 있다”라는 문장 하나로, 오늘의 고통은 미래의 투자로 둔갑한다. 성장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발급하는 가장 고급스러운 면죄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감각이 찾아왔다. 성장만을 중요시하며 살아왔는데… 되려 퇴화되는 부분이 있더라. 처음엔 부정했다. 퇴화라는 단어는 패배자의 언어 같았다.

내가 간과한 부분은, 성장은 종합점수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배분이 바뀌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다른 능력의 유지비를 덜 낸다는 뜻이었다.


인간은 전능하지 않다. 시간과 주의력과 감정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키우기 시작하면, 다른 무엇인가가 반드시 비어 간다.

예컨대 내가 ‘관찰력’을 키우면 내 삶은 더 선명해진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빠르게 포착하고, 그 감정이 내 몸에 어떤 형태로 달라붙는지 알아챈다. 나는 나를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관찰이 익숙해질수록 감정은 묘하게 ‘대상’이 된다. 나는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감정을 바라보는 자로 분리된다. 이 분리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어떤 종류의 생생함을 빼앗는다. 살아있는 감정은 분석 가능한 데이터로 변한다. 나는 그걸 성장이라고 불렀고, 어느 순간 그걸 퇴화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모른다. 나의 어느 부분을 어디까지 성장시켜야 하고, 어느 부분이 어디까지 퇴화되어도 좋은지를.


다만 더욱 바라 마지않는 것은, 나의 종합적인 능력치를 올리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베어버리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칼날 같은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나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키고 싶다.

퇴화는 실패가 아니라, 내가 어디에 자원을 쏟고 있는지 알려주는 영수증이다. 나는 그 영수증을 읽는 방식으로, 내 성장을 설계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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