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만 보이는 고통
요리를 좋아하나?
최근에 본 흑백요리사 2가 꽤 재미있었다.
화면 속 화려한 요리도 좋지만 결국 내가 제일 많이 해 먹는 요리는 파스타다.
재료비도 별로 안 들고, 건강하고, 간단하다.
파스타를 만들 때 제일 중요한 순간은
바로 면을 삶을 때 소금을 넣는 것이다.
아무도 이 과정을 칭찬하지 않는다.
빼먹어도, 차이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내가 먹을 파스타라면 그 맛이 꽤나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 누구도
“와, 이 면에 소금이 잘 배었네요.”라고
말하지 않고, 소스의 맛을 평가하기에 바쁘지만,
이게 없으면 전부 한 단계 아래로 떨어진다.
파스타에 소금을 넣는 건 새로운 맛을 얹는 것이 아니다.
그 파스타를 균형 있게 조율하고,
면과 소스의 맛이 서로 겉돌지 않게 한다.
면수에 소금을 넣지 않는다면,
면에 염분이 배어들게 하기 위해 소스를 더욱 묽게 만들어 졸이는 시간을 더욱 길게 가져가야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면은 불어버리고 만다.
여기서 철학과 비슷한 점이 보였다.
솔직히 자기 해부에 대해 생각하다 떠오른 비유다.
자기 해부는 엄밀히 말해 그 자체로 철학이 되지 않는다.
그 자기 해부로 말미암아 철학을 써내려 간다면,
그 자기 해부는 철학으로 편입이 된다.
진중한 자기 해부 없이 시작한 철학은 면수에 소금을 뺀 파스타와 같다.
그럼 이제 바꿔 말해볼까?
철학을 좋아하나?
건강한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만들며,
내가 인간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돌려준다.
철학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순간은
바로 철학을 시작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낱낱이 해부해 보는 것이다.
아무도 이 과정을 칭찬하지 않는다.
빼먹어도, 차이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 철학 글을 스스로 읽어본다면, 그 차이는 꽤나 분명하게 느껴진다.
철학을 시작하기 전에 자기를 해부해 보는 것은 새로운 사상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는 철학의 자기기만을 미리 배제하고,
스스로의 생각과 사유에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
자기 해부를 하지 않는다면,
자기 확신이 없는 것에 대한 방어기제로 인해
현학적 표현의 밀도만 높아지고, 문장의 중량감으로 독자를 압도하려는 글이 나온다.
파스타를 물에 소금 안 넣고 삶아도 뭐… 먹을 만은 하다.
자기 해부를 거치지 않은 철학도 뭐… 읽어볼 만은 하다.
다만 그 요리사와 철학자는 중요한 밑작업을 빠뜨려서 부족한 점이 보이는 결과물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자기기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나 다운 사유’, ‘나의 문체’, ‘나의 철학’을 논한다면,
면수에 소금을 안 넣고, 소스가 얼마나 화려한지 자랑하는 것과 똑같다.
그건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라,
기본을 건너뛴 채 결과만 설명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