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아 대신 제주 차 한 잔 마실까

제주 찻집 <규래차>

by 홀로 노는 홀씨

우연히 전통찻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은 마치 나의 취향 집합소 같았다. 잔잔하고 고요한 분위기, 차 끓이는 소리,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이후로 여행을 떠나면 그 지역의 ‘찻집‘은 꼭 들르곤 한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을 고집하던 나에게, ‘차’라는 취향이 다가올 줄이야.



열심히 달려온 상반기, 연차를 내고 홀로 떠난 제주 여행. 비가 내리던 날 <규래차>라는 찻집에 도착했다. 평소 혼자 여행할 땐 주변의 대화 소리나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 이곳에선 그럴 수 없었다.


바람 소리, 빗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까지- 제주도의 자연 소리가 찻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 귀를 막기엔 아쉬웠다. 끼고 있던 에어팟을 빼어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다.


1인 찻자리 (13,800원), 원하는 차부터 다양한 디저트까지 즐길 수 있다.


<규래차>에는 차문화권의 다국적 전문가분들이 함께하고 있는데, 사장님과 직원분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정이 느껴진다. 선물할 차를 구매하러 온 손님에게 사장님은 “디저트 하나 드시고 가실래요?” 하고 물었고, 직원분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못 들었지만, 흐름상 그렇게 퍼주면 어떡하냐는 느낌. “그냥 줄 거야~ 괜찮아~” 하고 웃으며 대답하고, 직원분도 따라 웃으신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고, 창가에 앉은 손님에게 춥지 않으냐고 묻는 사장님의 행동들이 무척 자연스럽고 다정하다.



정성스럽게 우려낸 차가 따뜻해서, 사장님이 건네는 말 한 마디가 따뜻해서,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추운지 몰랐다.


가만히 앉아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이곳에서 왜 이렇게 좋은 감정이 차오르는지 생각했다. 연차를 내고 온 여행이어서일까? 사장님의 다정함 때문일까? 생각에 잠기다 보니 이 공간이 주는 특별한 매력을 한 가지 발견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던 소리. ‘역시 제주도구나’하며 자연의 소리에 귀 호강을 즐기던 중, 문득 이상했다. 문은 닫혀있는데 이렇게 새소리가 끊기지 않고 난다고? 알고 보니, 잔잔한 인디 음악과 함께 새소리도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 두 개의 스피커를 사용하는 듯했다.


원래도 좋은 인디 음악에,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소리가 합쳐지니 이렇게까지 좋을 수 있구나! 플레이리스트는 또 공간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듣다가 저장한 곡만 서너 곡이 넘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옥수수 빙수를 다 먹고 나니, 식어버린 티포트에 뜨거운 물을 리필해 주신다. 시계를 보니 다음 코스로 이동하려고 계획했던 시간을 훌쩍 넘겼다. 잠깐 머무르다 가려던 곳이었는데, 좋은 것 투성이라 오래 있었다.


‘더 있고 싶지만 다음 일정도 있으니까 -’


속으로 되뇌며 빠르게 차를 홀짝였다. 아쉬운 마음에 얼른 다 마셔버리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드디어 남은 마지막 한 잔을 채우는 순간, 사장님이 멀리서 뜨거운 물을 들고 다가오신다. 안 돼요 사장님, 안 그래도 가기 싫은데 또 리필해 주시면 어떡해요. 곧 갈 거라서 괜찮다고 말씀드리자, 안 마셔도 되니 일단 따라주신단다. 사장님 유죄. 결국 총 세 번 리필해서 마시고 밖을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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