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동화로 바뀌고 있다.
카카오톡 프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반짝이는 눈동자, 고운 색감, 어디선가 본 듯한 햇살 속 인물들.
모두가 지브리 스타일 속에 들어가 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대화는 자연스럽게 ‘지프사’로 흘러갔다.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 줄여서 ‘지프사’.
누군가가 자신의 지프사를 보여주자
연달아 “완전 너다!”, “너무 예쁘다!”, “이건 꼭 저장해야 해” 같은 반응들이 쏟아졌다.
분위기는 따뜻했고, 모두가 즐거워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만큼은 웃었고, 링크도 공유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마음 한 구석이 뻐근해졌다.
모두가 저토록 자연스럽게,
동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을 바꾸는 이 흐름이
나는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졌을까?
지브리풍 이미지는 분명 따뜻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얼굴들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다정한 미소, 약간의 쓸쓸함, 부드러운 색감.
‘개성’이 아니라 ‘공식’처럼 느껴졌다.
‘이게 진짜 나 같아’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건 나를 감싸는 하나의 이상화된 틀이 아닐까?
나는 지프사를 거부한다.
지브리 스타일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나를 맞추려는 나의 습관을 거부하는 것이다.
현실의 나는
지치고, 울컥하고, 못생긴 감정을 품은 날도 많다.
그런 날을 지워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건 ‘예쁜 세계’가 아니라 검열된 세계다.
그리고 이 흐름을 가장 빠르게 포착한 사람들은
이 감성을 기술로 묶고, 유행으로 만들었다.
AI와 상업이 손을 잡고,
‘감성의 얼굴’을 만들어 팔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기검열을 하고, 감정을 표준화하며,
어느새 자신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다.
나는 아름다움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아름다움이 현실을 덮어버릴 때,
내가 가진 얼굴과 감정을 지워버릴 때,
그건 내가 사랑할 수 없는 풍경이 된다.
나는 지프사 속 내가 불편하다.
이상이 나를 대신하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나는 나라고 말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