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사이, 아직 하지 못한 말에 대하여
나는 초등학교 때
한글조차 서툴렀고,
말도 더듬어 자주 막히는 아이였다.
성적표엔 '양'과 '가'가 익숙했고,
첫째였지만,
부모의 기대에 제대로 닿은 적은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훔치기도 하고,
아빠 지갑에 손을 댄 적도 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배가 고팠고, 마음이 허전했던 건 또렷하다.
엄마는 하루하루 파출부 일로 집을 지탱했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번번이 속상하게만 했던 아이였다.
엄마는 화가 날 때마다 나를 때렸다.
그리고 하루는,
“너 같은 건 죽는 게 낫다”며
내 머리를 푸세식 화장실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화장실은 구더기로 가득했고,
나는 숨이 막혔다.
온 세상이 어두워졌고,
진짜로 죽을 줄 알았다.
그 순간 이후,
내 어린 시절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멀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못난 아이’,
‘머리가 나쁜 아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라는 말이
마음속 깊이 박혀 있었다.
그 말들은 오랫동안
내 삶을 휘청이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엄마 덕분이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엄마는
딸만큼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며
포기하지 않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울면서 책을 폈고,
참고 또 참으며 공부를 이어갔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고
마침내,
박사 가운을 입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단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한 번도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머리가 좋았던 적도,
재능이 특별했던 적도 없다.
그저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멈추지 않게 만든 건 상처였고,
그 상처를 남긴 사람이
결국,
나를 가장 멀리 밀어준 사람이었다.
얼마 전,
나는 엄마와 단둘이 맥주집에 앉았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조심스럽게 꺼낸 말.
“엄마,
나 어릴 때 화장실에서 머리 박았던 거…
그게, 진짜 너무 무서웠어.
그때 엄마가 나한테
미안했다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미안하다.
그땐 나도 너무 힘들었어.
너 하나 잘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는데…
방법이 너무 틀렸지.
정말, 정말 미안해.”
그 순간,
내 안 어디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던 감정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나는 그날,
어린 나를 처음으로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엄마도,
조금은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엄마를 마음 깊이 용서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외면해 왔던
어린 나도 처음으로 안아주었다.
지금의 나는 박사다.
하지만 그건 똑똑해서가 아니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끝내 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쓰러지지 않으려 애쓴 시간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