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지역에서 조합은 시공사와 아파트 건설 공사계약을 체결한다. 미리 약정한 공사대금이 있지만 설계변경과 자재비 인상 등으로 추가공사비가 지출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추가공사비의 부담을 두고, 시공사, 조합, 조합원 등이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으르렁거리고 있다. 미리 준비나 한 것처럼 유치권을 들고 나오는 시공사, 언론을 통해 고담준론의 여론전을 펼치는 조합원, 중간에서 바싹 엎드리며 눈치를 보는 조합 등 각양각색이다.
법대로 하자니 공사중단으로 수 년을 지나야 해결이 겨우 될 듯하고, 그 사이 치솟는 금리와 이자부담으로 급전빌려 공사하는 조합과 조합원은 속으로 애간장이 다 탄다.
설상가상으로 법대로 하면 조합과 조합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원래 공사계약으로 대금을 정하면 그 금액대로 지출되는 것이 원칙이고, 게다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로마시대 이후의 철칙까지 덧붙이면 일견 시공사는 꼬리를 내리는 게 순리인 듯하다. 더욱이 추가공사비를 원래의 계약 내용으로 포섭하지 않고 원래의 계약 외에 추가공사비의 지급에 관한 별개의 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는 게 법복의 입은 영감님들의 견해이다. 액면 그대로 한다면, 시공사는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러나 묵시적으로도 계약은 성립할 수 있다는 법리 때문에 실전의 법정에서는 시공사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 통상 2년 이상의 공사기간 동안 설계변경이 있으면 그에 관한 시공사와 조합 사이에 수 차례 공문을 주고 받는다. 돈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 언제 무엇을 누가 어떻게 하는지에 관하여 서면으로 이미 자락을 깔아 놓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물가상승의 경우에도 조합은 매우 불리하다. 공사 단계별로 철근 하나, 모래 한 삽 등 사용된 내역이 이미 조합에게 전달되었다. 그래 놓고 나중에 추가 공사비를 내 몰라라고 우기는 일은 부처 같은 판사에게도 가당한 일이 아니다.
눈치 빠른 조합원은 현금청산으로 배를 갈아 탔다. 남아 있는 조합원만이 발을 동동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 와중에도 믿는 구석은 정비사업비는 원칙적으로 조합이 부담해야 한다는 법 조문이다. 그러나 이전 아파트 소유자들은 조합설립 동의서를 이미 제출하였다. 그게 바로 재건축결의에 갈음한다. 궁극적으로 공사비를 책임진다는 서면을 지장을 찍어가며 조합에 제출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