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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Dec 26. 2023

어느 간호사의 당직

프로신데?

일요일 오후


어깨와 등이 차갑더니 오한이 느껴졌다. 아무리 두껍고 무거운 이불을 덮어도 따듯한 기운이 돌지 않았다.

어쩔까... 하다가 전기장판 온도를 한껏 올린 후 땀을 쪽뺐다.

그렇게 한숨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팔뚝 부위부터 뼈와 피부까지 싸한 기운이 돌았다.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가려 집을 나섰다.

 

마트 3층에 위치 한 병원은 휴일인데도 오늘 오후 8시까지 진료를 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급격한 노안과 뜨겁거나 찬 걸 먹으면 불편해지는 치아를 제외하곤 병원 갈 일 없는 중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병원행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도착하니 대기자가 68명 내가 69번째란다.

현관입구의 투명 유리문은 아예 활짝 열려 있었고 대여섯 명의 환자는 밖에 있는 딱딱한 장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당직 간호사 한분이

접수도 받고,

진료실로 안내도 하고,

그리고

주사실에서 주사도 놓는다.

그리고 처방전을 출력하느라 눈을 동그랗게 하고 컴퓨터 모니터를 째려봤다.


아, 저분은 철인인 건가?


접수를 하려고 긴 줄끝에 서 있던 몸집 좋은 아주머니는 다 쉬어터진 목소리로 어딘가로 전활 걸어 여긴 아직 접수도 안 했다며 퉁명스럽게 끊었다.


도저히 기다릴 환경도(좁은 공간에 밀집도가 너무 심했다.) 아닌듯하여 1층에 있는 마트로 가서 의식적으로 천... 천... 히... 장을 봤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후다다닥 장보기가 일수였는데 오늘은 슬로비디오처럼 느긋하게 계란 한 판을 카트에 담고 바삭한 과자 몇 개와 라면을 담았다.


억지로 슬로 라이프를 즐긴다.

그렇게 쇼핑카트 손잡이에 팔꿈치와 상체의 하중을 싣고 미적거리며 장을 보다 보니 아까부터 차가운 얼음을 댄 듯 몸이 으슬으슬거렸다.

진작부터 등과 팔뚝에 붙여두었던 핫팩도 별 효과가 없는 거 보니 단단히 병이 걸린 게 맞다.


한 시간 동안 장을 보고 병원으로 올라왔다.

어머나 아직 45번이란다... 하... 병을 고치려고 왔는데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에 오히려 병이 더 걸릴 것 같은 걱정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간호사는 진료를 봐야 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놓칠세라

000님 000님을 목이 터져라 부른다.

누군가는 ""하고 대답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되어 썰렁하게 되돌아온다.


마이크라 있으면 좋으련만...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빠른 말속도의 안내를 듣자니

감기 환자는 많은데, 주말 인력은 없는 병원의 긴박하고 바쁜 상황을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듯했다.

그래도 돌아가는 환자에게 꼬박꼬박 (진료받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얘기하는

친절함을 건네는 마음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건 단순한 인사를 넘어 최선을 다하는 몸부림 같았다.


'와우 프로신데?'


아마 당직이라 휴일 업무를 보는 거 같았다.

모두 쉬고 싶은 휴일,

겨울의 싸늘함이 지속되는 요즈음

환자가 넘치게 많으리라는 예측은 그 누구나 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업무를 최대한 친절이라는 평정심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녀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주어진 시간에 열심을 다하지는 않는다.

많은 직장인들은 때때로 당직이라는 플러스 업무를 다.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감당하는 사람도 있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업무라면 친절하고 야무지게 위기 같은 업무를 기회로 알고  감당한다.


이 위기 같은 기회를 어떻게 사용건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친절은 내가 선택하는것이다. 퉁명스럽게 할 것인지 웃으며 할 것인지 실천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사진출처 픽사베이>


같은 날, 키즈카페 알바를 하고 들어온 딸아이가 툴툴거린다.


오늘 15팀밖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날씨가 추우니 아이들의 바깥활동이 줄어듦으로 자연히 꼬마 손님도 줄어든 게다.


슬쩍 물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좋았겠다. 손님이 반으로 줄어서?


딸은 무슨 소리냐는 듯

"아니야 엄마 너무 손님이 없으면 심심하고 시간도 안 가 그래서 거기 온 아기들한테 서비스로 맛있는 사탕 하나씩 주면서 웃어줬어~

너무 사람이 없으면 재미가 없거든" 


다행이다.

친절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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