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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솜 Jul 18. 2023

가끔 우린 상한 음식도 먹지. 너가 그랬어 (1부)

바쁜 세상 속 빠르게 성공한 세 번째 소개팅, 세 번째 연애 & 이별

이별에 대한 고찰.


지나간 추억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진 않죠. 문득 '지나갔다'는 말이 어색합니다. 꽤 슬픈데요? 그는 이미 저의 지나간 사람, 우리는 이미 '우리'이기를 지나간 사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미련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지만, 문득문득 생각은 나요. 시간이 흘러서 뚜렷하지 않고, 책의 모든 내용이 생각나진 않지만, 목차는 기억나듯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오빠는 나한테 꽤 뚜렷한 사람이었어. 비록 오빠가 상했었다 해도. 그 음료를 고른 건 나니까.


봄이 오기 전 만났던 세 번째 소개팅은 연애로 성사되었습니다. 정말로 좋아했던 딸기 요거트같은 사람. 그는 달달하고 맛있었지만, 상해있었습니다. 카페에서 제일 비싼 음료라고 고르고 행복하게 다 마신 후 집에 돌아가보니 딸기가 상해서 배탈이 나는 경험처럼 매우 힘든 연애였어요.


가끔 우린 상한 음식도 먹죠. 상한 딸기 요거트를 마시고 나니 내게 이미 지나간 두 번의 연애는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타는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했는데, 불타는 연애를 해보니 재만 남아요. 활활 타올라서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습니다.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 곧 죽어도 불길을 걷겠다 하시면, 꼭 빠른 중도하차를 결심하시고 가보시길 바라요. 그리고 빨리 돌아오세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무 빨랐습니다. 서로를 채 알기도 전에 서로 좋아서 고작 세 번째 만남만에 연애를 결정했습니다.


'남자친구'라는 단어. '사귀자'라는 의미를 꽤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법적으로 묶인 관계는 아니니, 나름 깔끔하고, 서로의 선을 지키고 서로를 위하면서, 든든한 나의 편이 생긴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물론 둘 중 하나가 끝내려 하면 너무나 쉽게 끝날 수 있는 무기 계약직 같은 관계지만요.


되새겨보면, 왜 그렇게 오빠를 좋아했는지 모르겠어요. 딱히 큰 이유도 없었고, 살아온 배경과 환경도 다르고, 공통점도 없고, 삶의 목표나 가치관, 방향성도 너무나 달랐습니다. 결혼할 생각은 크게 갖고 않았던 나와 (백세인생, 오래 봐야 하는데 굳이 서둘러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결혼해서 빨리 울타리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


연애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힘든 연애를 해보진 않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들을 만났던 것 같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삶을 살았던 지라 서로 멀어지면서 자연스러운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연애는 더욱 신기했어요.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경험해 보았습니다.


만남을 시작하기로 한 지 한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첫 번째 이별을 당했습니다. 이게 차인 거도 아니고, 뭐지 했습니다. 만났다고 보기엔 짧은 시간이고, 이제 막 연애가 시작한다고 생각했던 단계에서 말입니다. 별일이 아니었고, 정말 사소한 일로 약간의 오해가 있어서 다투고, 저는 다음날에 출근을 해야 돼서 잠이 들었어요.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숙면을 취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은 혼자서 화가 났었나봐요. 새벽에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있더군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 연애가 앞으로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마음이 더 깊어지기 전에 그만하자고 문자가 와있었습니다. 제 얼굴을 보고 그렁그렁 울면서, 너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네가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한 게 정말 엊그제였는데 말이에요.


잠들기 전에, 다음날에 미안하다고 연락이 와있을 줄만 알고 푹 잤는데, 핸드폰이 무음모드인 사이에 혼자서 전화 몇 통에 결정을 내리고, 떡하니 이별을 고하는 그 분을 보고 있자니 너무 신기했어요. 첫 번째 연애에서 제가 배운 건, 정말로 헤어지는 게 아니고는 헤어짐을 쉽게 입에 올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말이요. 이게 뭐지 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렇게 순간 좀 멍했습니다.


음. 솔직히 남자에게 매달려 본 적은 없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뭐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좋아해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으론 이런 연애는 시작하지 않는 게 나을 걸 알면서도, 그래도 아직 해본 것 도 없는데, 일단 잡자, 잡아보자 생각을 했어요. 고심 끝에 길게 연락을 보냈어요. 오빠는 내일 휴무지만, 나는 내일 출근을 해야 해서 잠이 들었고, 하필 핸드폰은 무음이었고, 난 원래 무음을 잘하는 사람이고,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아주 깊은 잠을 잤고, 오빠가 걱정하는 부분은 잘 알고, 나도 그런 점에선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자기 팔자를 자기가 꼰다고, 시작부터 뭔가 순탄친 않았네요. 문자를 보내고, 나는 할 만큼 했다고 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어요. 그날 저녁에 상대방이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집 앞으로 오셨어요. 항상 웃는 얼굴로 만났는데, 처음으로 차분한 표정이셨어요. 그리고는 자기는 전연애들도 처음에 안 맞으면 계속 힘들었다고 그냥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이래저래 제가 설득하니, 설득을 당한 건지 아니면 원래 설득을 당하려고 오신건지, 그럼 앞으로 다시 만나보자고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게 다시 연애의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어요.


앞으로 잠시 서로 '우리'였던 이 긴 이야기를 줄이자면, 전 이 심폐소생술 이후에도 두 번이나 더 차였는데요, 그건 마음이 아파서 다음장에 쓸게요.


연애가 끝나면 무언가가 남겠죠.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오빠는 쓰레기는 아니었어. 그냥 상했던 것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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