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_달이 차면 기운다
"나는 무서운 나-무-늘보다."
"갑자기 웬 나무늘보?"
"학교 친구들이 저랑 가장 닮은 동물이 나무늘보래요."
"그러고 보니 닮았네. 느긋한 성격에 딱이네."
"근데 율아 나무늘보가 무서울 수 있어? 뭐가 무서운 거야."
"그럼 무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떻게? 그러니까 무섭다는 건 말이지... 그러니까... 음... 어렵네. 잠깐만."
"율아, '무서움'의 반대말이 뭐야?"
"그러니까... 저는 '편안함'이요?"
"편안함. 맞는 말이네. '무서움'의 반대말이 '편안함'이라면 아마도 율이는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무서움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럼 아빠는요?"
"아빠는, 아마도 '기대'가 아닐까 싶은데."
"'기대'요?"
"응, 내일을 기대한다고 할 때 '기대'. 아빠는 말이지 '무서움'이라는 게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정확히 말하면 일어날 확률이 높은 나쁜 일에 대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나무늘보는 무서울 수 없는 거지."
"왜요?"
"사자가 무서운 건 사자에게 공격을 받아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무서운 사자'는 괜찮지만 '무서운 나무늘보'는 이상하지. 우리가 나무늘보에게 다치거나 죽는 미래를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 반 민건이도 나무늘보가 무섭다고 했어요."
"그야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무서움이라기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닐까. 실제로 나무늘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을 거 같은데. 직접 본 적이 있대?"
"그건 몰라요. 내일 물어볼게요."
"아빠는 말이야 사자에게 팔이 물렸을 때, 진짜로 무서운 건 팔이 물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팔이 잘리거나 다른 곳을 물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어."
"그럼 상상인 거예요?"
"상상이라고 해도 좋겠지. '고통'은 아픈 거고, '고통의 결과'는 무서운 게 아닐까. 사람의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미래를 향하잖아. 시간이 계속 흐르니까."
"그럼 아빠는 뭐가 무서워요?"
"아빠는 많다면 많고 없다면 없어."
"그게 뭐예요? 꼭 넌센스 퀴즈 같아요."
"달이 차면 기울듯이, 막상 닥치고 나면 무서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