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만든 단단함

영화 《우리들》과 유효 충돌

by 엠삼

‘나랑 한 번 싸워보자. 응?’


이 문장이 호기롭게 들리는가? 이는 과거 스무 살의 내가 당시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이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라이벌도 아니고, 나를 괴롭혔던 사람도 아니고, 다름 아닌 연인의 입에서 나왔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싸워보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에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상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만 성공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했던 좋은 사람' 말이다. 갈등을 피하고 묻어두고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모든 행동에서 연결은 자연히 약해졌다. 충돌을 피하는 것이 어떻게 연결을 약화시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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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나온 모두가 알 듯, 친구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도덕 교육을 받는다. 감정을 쏟아내어 잘 싸워보라는 말은 교과서에 없다. 친구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문장 그대로의) 싸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과거의 우리들은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아예 교실 내 권력을 장악하여 아무도 싸움을 걸지 않을 인상을 주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위치의 친구들과 평범한 교실 구성원이 되는 선택지를 고른다. 그렇다. 적당한 선에서 평범한 교실 구성원이 되는 방법으로는 뾰족뾰족한 자신의 자아를 잘 숨기고 사회적 자아를 동그랗게 만들어, 갈등을 조금도 일으키지 않으며 교실의 문법을 착실하게 따르는 무던한 사람임을 모두에게 인증받아야 한다.


영화 《우리들》에 등장하는 ‘선’이는 1학기 내내 초등학교에서 무리에 잘 끼지 못했던 생활을 하다가 학기 말에 전학 온 ‘지아’와 우연히 친해지게 된다. 여름방학 내내 같이 선이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비밀을 이야기할 정도로 가까워졌지만, 이혼한 부모님이 있었던 지아에게 선이네 집의 단란함은 왠지 모를 질투를 느끼게 한다. 그렇게 다가온 2학기에 지아는 교실 내 소위 잘 나가는 ‘보라’의 무리에 끼면서 선이를 모른척하고 밀어낸다. 이 과정에서 지아가 선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고, 이에 선이가 알고 있던 지아의 약점을 교실에서 모두에게 까발리며 큰 소리로 싸우게 된다. 결국 둘은 모두 무리에서 배제되고 만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에 대한 경험은 영화 속 지아, 선이의 나이 즈음 모두가 처음 겪었을 것이다. 경험이 없어 날 것의 감정으로 대하며 더욱 잔인하게 상처 주고 상처 입게 된다. 지아는 전학 오기 전 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또다시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선이를 더 철저하게 무시한다. 보라네 무리가 선이를 자신의 무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선이를 그들이 왕따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으로 이어지기까지 이 인간관계의 문법은 크게 사라지지 않는다. 교묘하게 포장술이 늘어가며 이렇게 본격적으로 안전하게 싸워볼 터전도 마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충돌을 일으키는 순간 그 세계관에서 난봉꾼이 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제당하는 사람들의 낙인 효과는 더 짙어진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몸소 이 문법을 무의식적으로 배워왔다. 평범하게 무리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관계에서 절단되지 않기 위해 갈등을 피했다. 다수의 무리에 속해있기 위해, 분리된 사람들은 피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다수가 정상이라 판단하는 범주의 사람들과만 교류한다. 이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충돌은 결국에 연결을 약하게 만드는 방식이 아닌 연결을 만든다. 화학에는 ‘유효 충돌’이라는 개념이 있다. 2개 이상의 반응물이 생성물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충돌의 상황 중 유효한 충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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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위 그림과 같이 A와 BC가 충돌하여 AB와 C를 생성할 것이라면, BC의 B원자 방향으로 A와 충돌해야 유효하며, C 방향으로 충돌한 경우 A-B 결합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반응을 일으킬 충분한 에너지가 준비되어 있어도 유효하지 않은 충돌은 결합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충돌이 일어나야만 그 안에서 유효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응물과 또 다른 반응물이 충돌하지 않으면 결합을 구성할 확률은 ‘0’이다. 근처에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충돌이 일어났고 그 충돌이 유효하다면, 더 견고한 결합을 만들 수 있다. 서로의 인력에 붙잡힐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 주변부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의미 있는 연결이 생기려면 충돌은 필수다. 영화 속 선이와 지아는 서로에게 상처 주면서 크게 싸운 교실 안에서의 싸움의 절정이 유효 충돌이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두 상처를 고스란히 받았으며, 상대의 상처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서로가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선을 명확히 그려, 이 관계를 더 돈독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같은 이유로 다시 붙은 관계가 떨어지지는 않는 견고한 결합을 형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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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즈음에 선이의 동생이 말하는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라는 대사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선이는 동생에게 맞았으면 ‘그에 대응해서 때렸어야지!’라고 말하지만, 동생은 단순하게 놀고 싶었기 때문에 싸움을 마쳤다고 이야기한다. 싸움은 단지 그 이후에 다시 놀기 위한 과정일 뿐을 아주 간단하게 표현한다. 맞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갈등 상황 이후에도 상대가 나를 여전히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선이의 동생은 싸운 친구에게 그런 믿음이 있던 것이다.


KakaoTalk_20251217_105849977.jpg 회피형임을 회피하지 않기가 연결의 시작

어렸을 때는 싸우면 절교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지금도 그런가? 아니다. 실제로 그 문장이 들어맞지 않는 호적상 성인이 있다면, 당신이 품어라. 마음이 덜 자란 나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이 무서워서 지금도 갈등이 두려워 피하고 있다면 생각해 보자. 우선 부딪혀야 관계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우선 믿어라. 이 충돌이 부디 여러분에게도 견고한 결합을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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