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파괴의 연쇄

영화 《위플래쉬》와 자유 라디칼 연쇄 반응

by 엠삼

‘교육의 기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한다면 나는 교육은 폭력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학에서 교육 사회학을 들을 때 제출한 글에서 교육이란 체계가 왜 필연적으로 폭력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책 <시계태엽 오렌지>에 등장하는 화학약품을 이용한 교화 프로그램인 루도비코 요법을 예시로 들어 설명했다. 알렉스의 악한 본성을 교화하기 위해, 악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구역질이 나는 신체적 반응이 일어나도록 화학약품을 주사하여 조건 반사를 체내 시스템화하는 요법 말이다.

폭력의 어학적 정의는 어떻게 될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신체적인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물리적인 강제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손상과 압박을 통한 통제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을 받는 대상이 가진 의지가 선하고 악하건 간에, 그를 그가 원하지 않는 혹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면 사실 그게 폭력이 아닐까? 미성숙한 개체가 생각하는 방향이 최선일 수 있겠냐, 누군가는 최선을 알려줘야 한다고 반문한다면, 100% 최선을 제안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성숙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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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이라는 이름부터가 봐줄 생각이 없는 영화 《위플래쉬》에는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가치를 최우선을 가진 음악 교사 ‘플레쳐’가 등장한다. 최고의 연주를 위해서 신입생 ‘앤드류’에게 온갖 폭언과 학대를 쏟아내며 한계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영화의 시놉시스에는 ‘최고의 연주를 위한 완벽한 스윙이 시작된다!’라고 적혀있다. 해당 문장이 한국 교육계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로 들릴지 눈에 선하다. 최고와 완벽함이 주는 아무나 도달하지 못하는 세계에 그가 입성했다니! 입신양명했구나,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며 이름을 커다랗게 적은 현수막을 마을 이쪽저쪽에 걸어댈지, 얼마나 자랑스러워할지 말이다. 실제로 해당 영화의 리뷰를 살펴보면, 천재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노력’을 보며 자신의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끼는 삶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영화였다는 말이 빈번하다. 하. 과연 한국적인 대답이다. ‘채찍’을 맞고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면, 앤드류가 플레쳐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모든 과정에서 이제는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에 올라탄, 굉장히 기분 나쁜 가속감이 느껴진다. 영화가 후반부로 다다르며 앤드류가 흘리는 피가 점점 많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붕대를 감아도 드럼에 떨어지는 핏방울에서 시작하더니 결국 흐르는 정도가 된다. 이를 임시로 해결하기 위해 얼음물에 피가 흥건한 손을 담그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다. 얼음물에 수직으로 담그는 상황을 90도 회전시켜 스크린 전체에 피가 확산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을 관찰하는 이 순간에서 당장이라도 하차하고 싶을 정도로 불쾌함이 느껴진다.

특히 압도적으로 그 가속감이 극에 달할 때는 앤드류가 연주장에 가서 드럼을 잡기 위해 자가용을 타고 급하게 연주장으로 갈 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주장에 가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앤드류의 광기를 막아서는 것은 다름 아닌 교통사고인데, 그것마저 앤드류를 막지 못하고 결국에는 연주장에 도착해 카라반을 연주하게 된다.


이 멈추지 않는 광기의 질주에서 떠오른 화학반응은 자유 라디칼 연쇄 반응이었다. 라디칼(Radical)은 원래 영어 단어의 어원과 딱 들어맞게 급진적인 반응을 한다. 라디칼은 짝이 맞지 않는 홀전자를 가진 원자, 분자 또는 이온으로, 반응성이 매우 높고 불안정하여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디칼이 연쇄 반응에 어떤 역할을 할까? 보통은 반응물이 한 쌍이 있으면, 생성물이 한 쌍이 일어나면 반응이 종료된다. 그러나 자유 라디칼 연쇄 반응은 반응을 통해 또다시 생성물에서 반응을 이끌어 낼 라디칼이 등장하여 해당 순환을 여러 번 반복하며, 이 반응이 서로 가지를 치며 폭발적으로 확장되게 된다. 라디칼이 등장하는 연쇄 반응으로 우리가 흔히 알만한 예시는 오존층의 파괴 사례가 있다.


흔히 프레온 가스(CFCs)라 불리는 염화 불화 탄소 계열 분자는 매우 안정하여 공기 중에서 별 탈 없이 대기 중 성층권에 진입한다. 문제는 이원자 분자로 존재할 때는 반응성이 커서, 보통이면 성층권에 도달하지도 못할 염소를 아주 안전하게 오존층에 고이 모셔다 주는 점이다. 우주에서 들어오는 고에너지의 햇빛을 흡수하며 분자의 탄소-염소 간 결합이 끊기면 그때부터 광기의 질주가 시작된다.

염소 라디칼 원자는 오존층의 오존(O₃)과 반응하여 일산화 염소(ClO)를 만들고, 이 일산화 염소는 다시 오존과 반응하며 결국 2개의 오존이 3개의 산소 분자(O₂)로 분해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시 염소 라디칼 원자가 생성되며 이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끝날 때까지 염소 라디칼 원자는 결론적으로 소모되지 않는다. 물론 이 반응에도 여러 가지 제약이 걸리는 이유로 끝이 나겠지만, 염소 원자 하나가 대략 10만 개의 오존 분자를 산소 분자로 바꾸는 식으로 파괴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 영화가 나름대로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지만, 영화 너머의 감독이 생각한 앤드류의 끝은 다음과 같다. 다음은 screencrush (12/3, 2014)에서 감독이 그들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Fletcher will always think he won and Andrew will be a sad, empty shell of a person and will die in his 30s of a drug overdose. I have a very dark view of where it goes.

“플레쳐는 항상 자기가 (앤드류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과정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앤드류는 슬퍼할 겁니다. 공허한 사람이 되어 있겠죠. 그리고 30대쯤에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겠죠. 저는 그의 미래가 어두워 보여요.”



이제 시놉시스의 ‘최고의 연주를 위한 완벽한 스윙’에서의 스윙은 소위 ‘너희는 전혀 스윙하고 있지 않아.’라는 밈에 등장하는 음악의 미학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플레쳐가 앤드류를 한계까지 계속 몰아붙이며 폭언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강제하는 모든 순간이 그 채찍질의 스윙이다. 이 채찍질이 그의 삶을 얼마나 망쳐놨을지 액션물도 아닌 이 음악 영화에서 낭자한 핏자국만 봐도 알 수 있다.


교육이라는 필수 불가결한 시스템에서 학생들에게 뿌려지는 자유 라디칼들이 얼마나 많을까.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생산한 라디칼이 그들의 삶에서 어떤 연쇄 반응이 일어나게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폭력적인 가속도로 나의 가치관이 그들의 삶을 잠식하여 강제하게 될 것이라면, 애초에 교육의 그런 폭력성을 해결할 수 없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아이들에게 전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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