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창조의 환상

영화 《루비 스팍스》와 합성반응

by 엠삼

주변을 나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만큼 오만한 마음도 없을 것이다.


모두 저 의견에 크게 무리 없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앞선 동의와 별개로 우리는 생각과 다르게 저 마음으로 삶을 대할 때가 많다. ‘내가 수능만 잘 보면 꽃 같은 대학 생활이 시작되겠지.’, ‘대기업 취업만 성공하면 내 삶은 탄탄대로야.’, ‘내가 꿈꾸는 이상형이 나타나 그 사람과 결혼하면 내 삶은 이제 행복해질 거야.’. 이 문장이 오만한 마음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묻는다면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내가 수능만 잘 보면 꽃 같은 대학 생활이 시작되겠지.’의 수능 결과는 대학 생활의 질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는다. 대학교에 같이 다니게 될 학생들의 생김새와 성격, 교수님들의 건강이나 유머 감각, 치르게 될 시험의 난이도, 대학교 화장실의 청결도와 교내 카페의 메뉴까지 나의 수능 결과는 그 무엇도 결정할 수 없다. 꽃 같은 대학 생활이라는 말도 사실 세부 사항 없는 판타지다. 심지어 이 판타지를 내가 수능 잘 봐서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논리가 다를 바 없다.

위 세 사례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이런 사고는 크게 3가지 단계를 거쳐 일어난다.


1. 완벽한 상태가 있을 것이고,

2. 나는 의지를 발휘해 그 완벽한 상태로 도달할 수 있으며,

3. 만일 도달하게 된다면, 완벽하게 된다.


심리학에서 이런 믿음을 ‘완벽주의’라고 지칭한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보다 완벽한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는 신념으로, 완벽한 성취와 역량, 사회적 가치 조건들의 완벽한 내면화를 통해 이상적인 상태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신념 체계이다. 필자 본인도 무의식에 기본 탑재된 사람인지라 이 신념 체계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1~3번 단계가 과연 가능할까?


영화 《루비 스팍스》의 제목이기도 한 루비 스팍스는 영화 속 주인공 캘빈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꿈속에서 나온 이상형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루비와 상상으로 연애를 한 캘빈에게 어느 날 현실에 루비가 실제로 등장한다. 불어를 하는 루비로 묘사한 글을 적으면 불어를 할 줄 아는 루비가 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소설에 묘사하는 대로 루비가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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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도 생명을 가진 유기체인지라, 캘빈이 묘사하지 않은 부분들은 현실에 살면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활발한 성격의 루비가 집 밖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집에서 글을 써야 하는 캘빈은 질투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자 캘빈은 타자기에 가서 ‘루비가 자신과 떨어져 있으니 우울해져 자신에게 붙어있으려 한다.’라는 묘사를 적는다. 그러자 루비가 우울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와 캘빈에게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중에는 우울한 모습이 지속되는 루비가 싫어 춤추고 웃는 루비를 만들었으며, 그 결과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은 채 춤추고 웃는 사람을 만들었다. 미친 사람이나 다름없다.


화학에서도 이렇게 원하는 물질을 합성하려고 시도했던 역사가 있었다. 구조식을 그려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자와 그들의 배치 구조를 표현했고, 이를 바탕으로 물질을 구현하려 했다. 문제는 구조식은 2차원 평면 위에, 물질은 3차원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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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친핵체(Nu-)가 탄소 양이온 평면의 위와 아래 두 방향 모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위 그림의 반응에서는 두 가지의 화합물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물질을 광학 이성질체라 부르는데, 한 쌍의 이성질체는 마치 오른손과 왼손이 대칭이지만 결코 겹쳐질 수 없듯 구별된다. 의약품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이로 인한 문제가 드러난 대표적 사건이었다.

당시 탈리도마이드를 합성하고자 했을 때. 분자식도 같고 물리, 화학적 성질이 같은 물질이나 생체 내에서 다르게 작용하는 물질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종이에 적힌 경로를 따라 약품을 합성하였고, 완벽히 이론에 맞게 합성했다. 다만, 두 가지 다른 물질이 만들어질지도 몰랐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성질체 중 한 형태는 물질은 입덧 현상을 감소시키지만, 다른 한 형태는 기형아를 만들었다. 입덧을 해결하기 위해 먹었던 약에는 기형아를 만들 수 있는 물질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비극을 만들었다. 완벽한 창조를 꿈꿨으나,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현상을 앞서지 못하듯 반례가 등장했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와, 캘빈이 생각했던 완벽한 상태인 자신의 이상형을 창조하는 것은 애초에 가능할까? 이제부터 미뤄왔던 완벽주의적 사고의 3가지 단계를 다시 보자.


1. 완벽한 상태가 있을 것이고,

2. 나는 의지를 발휘해 그 완벽한 상태로 도달할 수 있으며,

3. 만일 도달하게 된다면, 완벽하게 된다.


1번 ‘완벽한 상태가 있을 것이다.’의 완벽함은 사람의 인지에서 나온 체계이다. 사람의 인지는 오감과 뇌의 정보 처리 능력과 결합하여 발현되며, 결국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를 인식하려 한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즉, 내가 그린 완벽함은 어디까지나 내 인식 체계에서 그린 스케치일 뿐, 자신이 가진 경험 데이터를 뛰어넘어 고려해야 할 부차적 조건이나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전제가 없다. 캘빈은 자신이 꿈꿔온 완벽한 이상형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완벽함을 고안하고 작성할 수도 없는 사람일 뿐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루비를 묘사할수록 미친 사람이 되어갔던 장면이 이를 뒷받침한다. 애초에 완벽한 상태를 그릴 수도 없으니 완벽해지겠다는 생각은 다 허상이다.


애초에 완벽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신이 되겠다는 마음이다. 우리는 신이 될 필요가 없다. 사람은 언제나 결함이 있고 어차피 완벽해질 수 없어서, 결함을 메우는 쪽이 아닌 결함을 보듬으며 사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면 평생 시달리게 될 목마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은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결함으로 인해 평생 갈증 속에서 살지 않도록 사랑을 발명했다. 완벽주의의 대척점은 대충 사는 방임이 아니라,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존재를 인정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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