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일기-02

내가 키운 선악과

by 담장넘어도깨비
무릎 꿇고 죄를 먹다

2020. 04. 06. 월요일

신이 인간에게 주었다는 자유의지

선악과를 제한 모든 능력을 부여받아 남부러울 것 없었는데. 자유로운 의지는 완벽해 보이는 아담과 하와도 죄를 먹게 한다. 죄를 짓는 것은 태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걸까?




(과거 회상 작가노트)

나의 드로잉 일기는 거의 글을 남기지 않는다. 기록을 선호하지 않는 데는 4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첫째, 기록을 통해 사건을 사진처럼 기억하기보다는 감정의 형상을 상상하며 그리는 것이 마음을 더 안정시켜서이다.

두 번째, 죄의식을 느꼈던 시간들은 오래도록 괴로웠기에 글로 남겨놓고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다.

셋째, 우연히 누군가가 나의 기록된 글을 읽게 되는 불편한 상황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다.

넷째, 괴로움을 그리다 보면 신이 나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지 않을까 하여 기도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흘러버린 시간 탓에 왜 저런 이미지가 나왔는지 알 수없다. 저런 비슷한 드로잉이 더러 있는 걸 보면 무언가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래서 그 괴로움이 반복되며 오래 지속될 때 더러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죄를 지으며 동시에 용서를 구하는 내 모습이 꼭 저런 모습인 거 같아 저렇게 그려졌나 보다.


열매로 변한 손가락, 군침을 흘리는 입, 이미 입속으로 들어가 있는 과일, 잘못을 아는지 꿇고 있는 무릎, 정상적인 위치를 벗어난 눈, 코, 입. 문제의 경중을 떠나 죄책감이 생기면서도 죄를 짓게 된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잘못을 만들어내는 내 모습이 흐트러진 눈코입처럼 제정신은 아닐 것이다.


죄는 때로 기이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하반신은 잘못을 알고 뉘우치지만 상반신에 달린 손과 입은 죄를 키우고 먹는다. 한 몸에서 저렇게 상이한 액션이 2가지 이상 나온다는 것은 몸속에 2가지 이상의 어떤 존재가 살고 있거나 육체와 영혼이 각각의 자유를 가지고서 합의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도대체 인간의 몸뚱이에 각각 몇 개의 자유의지를 심어놓은 것일까? 이렇게 손발이 다 따로 놀아 나도 모르게 죄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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