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배려,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이야기

슈퍼에서 울던 어린아이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

by 아샷추

요즘은 '노 키즈 존(No Kid Zone)'이라며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카페나 가게가 속속히 생겨나고 있다. 어린 시절 음식점 안에 위치한 놀이공간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을 즐겼던 나로서는 지금 세상의 모습이 꽤 씁쓸하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사랑을 받고 자랄 자격이 있으며, 사랑을 받으며 자란 우리는 그것을 다시 되돌려 줄 필요가 있다. 사랑받고 자란 성인들은 이제는 아이를 시끄럽고, 불편한 존재로 취급하는 건 물론, 배척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완전한 성인이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숙한 존재다. 실제로 지금 성인이 된 지 조금 지난 나지만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말하는 감자야. 아니 응애야.”라고 얘기할 정도로 미숙하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는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거다. 아이가 하는 행동 무엇이든지 괜찮다며 이해받았던 시절과는 다르게, 요즘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냥 들어오지 말라고 해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미숙하지만,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해와 존중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슬픈 현 사회 모습을 잠시 눈 감아두고, 2000년대 극 초반으로 돌아가서, 그 시절의 따뜻한 손길에 대해 떠올려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난 어릴 적부터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큰 집착을 하고 있었다. 엄마의 말로는 한 살 터울의 동생이 생겨서 그런지, 아직 아기인데도 ‘언니’라는 이유로 동생에게 양보해야 했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들 유년 시절에는 엄마 옆에 꼭 붙어있는 걸 좋아했을 것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가 또래에 비해서는 심했다.


상태가 얼마나 더 심각했냐면, 아이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하여 각기 다양한 분야의 시설에서는 방학 때면 캠프가 열린다. 독서 캠프나, 태권도 학원에서 함께 스키를 배운다는 지 등 한 번쯤은 겪어봤을 거다. 엄마랑 떨어지면 극심하게 불안해하는 나를 변화시키고자 부모님은 친구들과 함께 캠프를 자주 보냈다. 그때는 도움이 되고자 보낸 캠프가 오히려 더 일을 크게 벌였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나는 캠프의 일정을 하다가 밤만 되면 울기 시작했고, 잠은 잘 수 없었다. 그리고는 담당 선생님의 휴대폰을 붙잡고 새벽같이 눈물을 흘렸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감당해야 했던 선생님은 무슨 죄인가 싶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캠프가 하나 있는데, 기독교인 친구를 따라 교회에서 3박 4일간 가는 캠프가 있었다.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들이 밤마다 지하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게 어린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또한 몸이 온종일 긴장되어 있으니 장기들이 무사할 리가 있을까. 그래서 4일 내내 체했고, 속을 게워내야 했다. 나중에는 속을 가라앉히려 한 번에 양 손가락 모두를 바늘로 땄다. 난 이렇게 엄마와 떨어지는 걸 불안해했다. 엄마가 퇴근하는 6시가 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했고, 언제는 밖으로 나가 직접 찾으러 다닌 적도 있다.


두서가 길었지만, 이제부터는 작은 슈퍼의 아저씨와 나의 이야기다.


우리 집은 주택가였고, 골목을 조금 걸어 나오면 작은 크기의 슈퍼가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필요도 없고, 가까이에 위치하니 심부름이나 간식을 사 먹을 때 자주 갔었다. 슈퍼는 학교와 우리 집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덕에, 나의 등하굣길엔 항상 아저씨가 계셨다.


그날도 다를 것 없었다. 슈퍼 앞에 위치한 작은 의자에 앉아계셨고, 앞을 지나간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할 일을 한 나는 창밖을 쳐다보니 어느새 해는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옴이 느껴졌다. 시계는 어느새 6시 20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나의 불안감은 극도로 커졌다. 이런 나를 위해서 엄마는 늦을 땐 미리 연락을 줬었다. 그러나 그날은 연락도 없었다. 밖은 어두워졌지, 집 안에는 혼자 남아있지, 그러니 또 자연스레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30분을 가리킬 무렵에는 이미 나는 밖을 나선 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을 박차고 나간 바깥 풍경은 아름다웠던 것 같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는 덕에 거리에는 연등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공포에 질려있는 어린이에게 등불의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랴.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기에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서 밖으로 나왔는데, 넓은 세상에서 엄마 한 사람을 어떻게 찾을까? 어쩌다 슈퍼에 도착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밖을 나왔는데... 얼마 뒤 내가 슈퍼 앞 의자에 앉아 아저씨가 건네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너 왜 계속 울고 있니?”
“엄마가 안 와요.”
“위험하니까 돌아다니지 말고, 아저씨랑 같이 기다리자. 곧 오실 거야.”

없어지지 않는 불안감 때문인지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바깥을 배회하는 나를 의자에 앉혀둔 아저씨 덕에, 금세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아이는 엄마를 찾아온 동네를 쏘다녔을 것이다. 개인 휴대폰도 없던 때라, 소통이 안 되어서 자칫하면 더 큰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아저씨와 의자에 앉아 많은 얘기를 한 건 아니다. 진정이 쉽게 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막상 앉아있으니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만 묵묵히 먹고 있을 뿐이다. 옆에서 괜찮다고 달래주고, 입에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들어가니까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다음에야 하늘에 걸린 반짝이는 등불이 보였다. 그리고 흐르지 않던 시간도 빠르게 흘러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지금은 부모님과 떨어진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떨어져 있는 걸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당시의 어린 나는 나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극심하게 불안해하였고, 망상 능력이 뛰어난 터라 더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다행히도 성장하면서 분리불안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는데, 터닝 포인트가 그때였던 것 같다.


원래 이런 소재를 다룬 소설의 끝에는 갑자기 은인이 소리 소문 없이 자리를 비운다거나 사라져서, 주인공이 그를 그리워하는 걸로 진행된다. 가끔은 인생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을 때가 있다. 다음날 나는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전하려 슈퍼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나 나와 마주치는 건 아저씨가 아닌 다른 이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저씨는 슈퍼를 지키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기억이 길다면 얼마나 길다고,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전해야겠다는 생각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슈퍼 안으로 들어가고는 했는데, 아저씨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만날 수 없었다.


기억 속에 잊혀갈 무렵 듣게 된 아저씨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이후로 슈퍼는 문을 닫았고, 임시휴무라고 적혀있던 종이는 ‘매매 구함’으로 바뀌었다. 조그마한 슈퍼의 자리에는 학원, 결혼업체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가 들어서 이제는 이전의 모습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나의 추억은 정말 기억 속에서만 살아 숨 쉬게 되었다. 지금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그 자리에 슈퍼가 있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던 건물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건물이 생긴다. 외형은 변화하겠지만 터는 그대로 남는다. 그 주변을 지날 때마다 나와 아저씨가 떠오르고, 연등불이 켜지면 당시의 하늘이 연상된다. 아저씨가 건넸던 아이스크림과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몇 마디의 대화들은 그 자리에 멈춰있겠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에 깊게 남아있다.


아저씨처럼 다정한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어린아이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아이를 귀찮고, 유해한 존재로 여기는 현 사회에서, 유년 시절에 사랑받고 자란 어른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어리숙한 존재가 견고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아이들이 자라나는 데에 상처를 주거나, 훼방꾼이 되는 건 옳지 않다. 아저씨의 작은 관심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우리의 사소한 배려와 행동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받은 걸 돌려주지는 못할망정, 상처를 남기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받고 자란 어른들의 세계가 이러하다면, 그렇지 못했던 이들이 만드는 세계가 어떤 모양을 보일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별이 된 아저씨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갓(God) 생(生), 어떻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