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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Apr 12. 2024

무능을 직면하다

빌런 총량의 법칙… 그 빌런이 바로 나?!?

나눌 수 있는 감정은 어떤 걸까요? 기쁨, 슬픔, 분노, 놀라움..? 당신은 누구에게 어떤 감정을 드러내 보이고 있나요? 감정 유발자?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


요즘 친한 친구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제가(프로젝트 말고 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방향을 찾아보려 할수록 주위에 친구들은 없고 혼자 전혀 다른 곳에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 방황(?)을 토로하자니 한창 달리는 상황이라 적당한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초반이었으면 말하기 좋았을까요,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그때는 괜찮을까요. 적당한 시기라는 건 원래 없다는 건 알지만 저를 위한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버릇은 못 고칩니다.(왜인지 모르게) 아주 바쁘면서도 어쩔 줄 모르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남편에게 들키고야 맙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데?'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일을 하면 뭘 해도 재미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뭘 기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행복하질 않네.' 그리고는 눈물이 떨어집니다. 놀란 남편이 묻습니다. '왜 그럴까?'


회사를 관둔 후 10여 년을 혼자 일하다 보니 같이 일하는 센스를 잃었고, 소통도 안되고, 트렌드도 모르겠고, 감정도 잘 조절되지 않습니다. 기대한 적도 없는 부문에서 저에 대한 실망이 큰데 그걸 극복할 방법도 모르겠고 제가 빠지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자꾸 도달합니다. 맞아요, 저는 무능함으로 인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마치 연차가 가득 찬 상태로 새로운 부서에 발령 나서 남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고 혼자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고, 빌런 총량의 법칙에서 그 빌런이 바로 나라는 걸 발견한 것 같기도 합니다


매 순간 쓸모를 고민하며 살아가기에 필요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은 꽤 일상적인 감정입니다. 그러다 내가 쓸모가 없나 싶은 상황이 진짜 다가오니 이만저만 당황스러운 게 아닙니다. 쓸모를 어떻게든 발굴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지만 어긋나기만 합니다. 무능하다는 것 자체가 감정은 아니지만, 따라오는 실망, 좌절, 자존감 훼손, 불안을 모른 척할 수가 없습니다


재미(?) 있는 건,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매 순간에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겁니다. 제가 무능함을 느끼는 게 (아마도) 친구들의 유능함을 확인하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럼 저는 일정 부분 기쁘거나 안도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프로젝트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니 너무 다행이다! 이래야 할 거 같은데, 마냥 불편합니다. 열등감일 수도 있겠죠. (단 한순간도 이 영역에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잘하고 싶었던 적도 없는데 얘는 왜 아무 때나 튀어나올까요?) 그렇다고 친구들이 부러운 건 아니거든요. 역시 이상하네요. 마구 쏟아지는, 하지만 뭔지 모르겠는 이 감정은 저를 여기저기 끌고 갑니다.


같이 하면 재미있을 줄 알았어, 의 '같이'가 무슨 뜻이었을까요. 친구들과 하하 웃으면서 이것도 좋아 저것도 좋아 그러면서 칼로 자른 듯한 n등분 역할과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한 걸까요. 서로 등을 밀며 기대야지만 일어날 수 있는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혼자 온몸에 잔뜩 힘주고 일어서려 끙끙대다 엉덩이도 못 떼고 쓰러지고는 '그것 봐, 안되잖아'라고 쉽게 투덜댑니다. 정말이지 함께, 같이, 상호 작용, 소통, 연대, 연결 등등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문제없어도 내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지고, 내가 속상하니 우리에서 떠나야겠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착합니다.


일할 때에는 특히나 이성적이었던 사람이라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적응도 안 되고, 그래서 뭐가 뭔지 잘 정의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해결이나 해소의 의지가 있어야 소통할 텐데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 이쪽으로 생각이 향하는데요) 제 무능이 문제라면 팀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제가 유능해져야 할 거고, 다른 친구들 역시 제 무능을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될까 봐 걱정도 됩니다.


어쩌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안 날 순간일 지도 모릅니다. 회사 다니면서 새로운 분야나 신규 고객의 프로젝트에서 비슷한 방황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요.) 남편의 길고 긴 위로(!) 중 인상적인 한 문장으로 급 마무리합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거 같다고? 음.. 프로젝트 마치면 그래도 뭔가는 할 수 있게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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