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그 성공을 증명해 낼 필요는 없어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사건에 가깝습니다. 특정한 시점과 조건 속에서, 우연과 선택이 정교하게 맞물려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공들인 작품이 흥행하는 것, 혹은 예상치 못한 성과를 내는 경험들 모두 그렇습니다. 모든 사건에는 고유한 맥락이 있고 시작과 끝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온전히 같은 일은 결코 다시 반복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 개별적인 사건들을 너무 자주 상태로 치환하여 해석하곤 합니다. 특히 비슷한 사건이 몇 번 연달아 일어나면 그 해석은 견고한 정의가 되어버립니다. 시험을 몇 번 잘 보면 어느새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그 말은 곧 '앞으로 영원히 잘될 사람'이라는 예언처럼 쓰입니다. 반대로 몇 번의 실패는 '미래가 걱정스러운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정리됩니다. 찰나의 경험이 '성공한 인생' 혹은 '망한 인생'으로 번역되는 순간, 인간은 결과라는 높은 단상 위에 올려지거나 차가운 바닥 아래 묻혀버려요. 그 이후의 삶까지 송두리째 결정되어 버리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죠.
사람이 겪는 사건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상태는 고정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고정된 사람은 타인과 비교하고 평가하기에 아주 편리한 대상이 됩니다. 사회는 일어난 일의 맥락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를 주기보다, 결과만을 추출해 한 사람의 인생을 '성공 신화' 혹은 '실패 서사'로 박제합니다. 인물을 자기 서사에 가두어두고 그가 그 틀에 걸맞게 잘 해내고 있는지 지켜보는 관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감각은 성공을 다루는 방식에서 유독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어떤 분야에서의 성취는 단지 그 능력의 결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삶 전체의 우월함으로 확장하곤 합니다. 탁월한 성취를 한 인물의 패션, 소비 방식, 말투, 심지어 가치관까지 삶 전반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현상이 대표적이에요. 우리는 '성실하게 고생해 성공했으니 그럴 만하다'며 그를 하나의 완벽한 인생 모델로 받아들입니다. 능력이 거둔 사건이 인물 자체의 상태로 번역되는 순간, 사건은 신화가 되어 급 단순해집니다. 위인전이 실제 삶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와 비슷할 겁니다. 흔들림과 방황은 그저 성공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축소되고, 특정 시기의 성취가 인생 전체를 대표하게 되니까요.
이런 구조 속에서는 성공 이후의 불안과 중압감이 숙명처럼 따라옵니다. 상태가 된 그때의 그 성공은 앞으로 내 모든 삶에서 지켜내야 할 높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공은 즐거운 사건이 아니라, 계속해서 증명해야 할 생존 조건이 됩니다. 새로운 시도의 실패는 경험이 아닌 실망이 되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은 회복이 아닌 추락으로 해석됩니다. 이렇게 올려치기는 결국 감당하기 힘든 높은 기준을 남기고,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가혹한 후려치기가 시작됩니다.
이 비정상적인 문법은 외모, 지능, 집안, 부와 같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조건들에서도 반복돼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조건으로 누군가를 찬양하거나 비하하는 것 역시 사람을 상태로 박제하는 일입니다. 찬양 역시 위계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정 조건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추앙받는 순간, 그 조건은 인격과 위치를 결정짓는 고정된 상태가 되니까요. 조건이 곧 인격이 되는 이 방식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을 남깁니다. 게다가 이는 특정 인종을 선호하거나 차별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도 않아 보여요. 존재 그 자체가 상태가 되어 평가의 도마 위에 오르니까요.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올려치기'와 '후려치기'의 반복입니다. 사건과 조건을 상태로 만들어 사람을 위아래로 줄 세우니까요. 이렇게 맥락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은 자리에서 사회는 더욱 불안해지고 관계는 경직됩니다. 성공은 단조로운 모양으로만 존재해야 하고, 실패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 존중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진정한 존중에는 조금 다른 감각이 필요한 거 같아요. 상대가 겪은 사건을 그저 담백한 사건으로 흘려보내고, 잘한 일을 축하하되 그것을 평생 짊어져야 할 무거운 상태로 만들지 말고, 성공을 축하하고 실패를 위로하되 그것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규정하지 않도록 여백을 두는 태도 말입니다.
사건과 사람을 분리해서 바라볼 때, 삶은 비로소 가벼워집니다. 결과를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타고난 조건을 변호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후에 무엇을 시도하든 그 일 또한 하나의 지나가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여지가 생기니까요. 올려치기와 후려치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서로를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모두 각자의 삶을 유영하는 독립된 인간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화려한 칭찬이나 더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사건을 사건으로 두는 연습'인지도 모르겠어요. 성취를 존중하되 사람을 소비하지 않고, 실패를 이해하되 사람을 묶어두지 않는 선택. 사람을 '상태'로 만들지 않는 존중이 가능해질 때, 우리는 조금 덜 긴장하고 조금 더 자유롭게 흔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