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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ul 12. 2021

유럽 여행기 - 1일 차 (스페인, 바르셀로나)

늦게 찾아오는 밤, 그리고 맥주

2019년 6월 28일.


42박 43일의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약 6주의 여행을 위하여 두 달 동안 준비를 했다.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사실 두 달도 나에겐 짧았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시간표를 만들어나갔다.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드디어 여행 준비를 마쳤다.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예쁜 옷과 신발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예약한 티켓들과 여권 사본을 프린트했다. 캐리어에 나의 모든 짐들을 꾸역꾸역 넣은 뒤에, 무게를 체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까먹고 챙기지 않은 것들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무언가 두고 가는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두고 간 것은 셀카봉 리모컨이었다.) 약 12시간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한동안 한식을 먹지 못할 것 같아 기내식은 한식으로 골랐다. 불고기와 쌈장, 그리고 김치볶음밥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는가. 먹고 자고, 영화를 보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12시간이 지났다. 기지개를 켜며 비행기에서 내릴 때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6주 동안 잘해보자!'


 나의 첫 도시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다.  공항에서 바로 숙소로 출발했다. 첫 숙소는 무난한 곳이었다. 싱글 침대 2개가 있고, 좁은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이 정도면 깔끔하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짐을 풀고 거리에 나왔을 때가 벌써 오후 8시였다. 한국이었으면 오후 8시쯤엔 노을이 깔리고 있었을 텐데, 이곳은 대낮이었다. 늦게 일정을 시작해서 아쉬웠지만, 밝은 거리를 거닐다 보니 대낮 같아서 기분이 들떴다. 들뜬 기분과는 달리 몸은 시차와 장시간의 비행으로 꽤 피곤했다. 10시쯤 되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피곤하지만, 바로 잠에 들기엔 아쉬워서 (그리고 아직 체력이 많이 남아있어서)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맥주를 한 병 마시기로 했다. 테라스에 앉아서 맥주를 주문하고, 주변 소리에 집중해보았다. 영어가 아닌 낯선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비로소 실감을 했다. '아, 이곳이 유럽이구나.'


 주문한 맥주가 나왔다. 맥주병을 따자 시원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김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사실 술을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고, 잘 마시지도 못한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져서  웬만하면 마시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조금 달라지기로 했다. 매일매일 맛있는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심지어는 대낮에도 술을 마시는 걸 도전하기로 했다. 유럽에서는 빨간 얼굴로 돌아다녀도 될 것 같단 말이지? 샹그리아, 라들러, 와인 등 사람들이 맛있다고 극찬하는 술이 잔뜩 있으니 기대도 되었다. 술은 별로지만, 맛있는 술은 환영이다.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안주가 없었어도 바르셀로나의 밤공기가 안주를 대신해 주었다. 맥주 한 병도 못 마시던 내가 그날 밤엔 한 병을 모두 마셨다.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해 슬슬 잘 시간이 되었다. 술을 마신 대가로 새빨간 얼굴이 되어 숙소에 돌아갔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다. 술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피곤해서 인지, 무언가 생각하기도 전에 잠에 들어버렸다. 여행 첫날은 짧게 마무리되었다.



 여행 첫날은 항상 설렌다. 하지만 이렇게 긴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여행의 끝에 대해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6주 동안 별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소매치기, 강도, 인종차별, 배드 버그, 그리고 6주 중 2주는 혼자 다녀야 한다는 것들이 주된 걱정이었다. 사실 여행 첫날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 길을 걷다가 옆을 지나가던 어떤 흑인이 나를 향해 "니하오"라고 소리쳤고, 내가 화들짝 놀라자 낄낄 거리며 갈 길을 갔다. 인종차별을 당하자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고, 앞으로도 종종 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매치기도 큰 걱정거리였다.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유럽 여행 커뮤니티 중 하나인 '유랑'이라는 카페를 자주 방문했는데, 온갖 소매치기 수법에 당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종종 보였다. 그러한 수법들에 최대한 사전에 예방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해갔다. 캐리어를 들고 기차에 탈 때를 대비한 케이블과 자물쇠, 항상 몸 앞에 짐을 지니기 위한 힙색 가방과 자크 부분을 쉽게 열지 못하게 잠가놓을 자물쇠, 그리고 핸드폰과 내 몸을 항상 연결해줄 스프링 줄 등을 챙겨갔다. 그 덕분일까. 소매치기에 당할 뻔한 적은 있지만, 당한 적은 없었다. 누가 봐도 철통 보안을 한 여행객으로 보였을 것이다. 걱정이 많았지만, 이미 내 몸은 유럽인 것을 어떡하겠는가?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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