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우주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법칙
다른 우주와 달리 우리가 사는 우주는 이상하다. 하얀 민들레 갓털은 약한 바람에도 곧바로 흩어지고, 인간은 태어나 늙고 병들고 끝내는 죽어 흙이 된다. 바위는 세월이 흐르면서 비바람에 모래로 갈라지고, 거대한 나무도 생을 다하면 흩어져 흙이 된다. 이렇듯 우리 우주의 모든 존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섞이고 깨지고 흩어진다.
우리 우주에서는 가만히 놔둬도 모든 것이 죽고 부서지고 깨지고 사라지고 흩어지는 최악의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기에 죽음이 자연스럽고, 살아 있는 게 정말 이상한 곳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주의 입장에서는 정말 기이한 존재다. 왜 우리 우주가 시간에 지남에 따라 섞이고, 흩어지고, 깨지는 혼란으로 치닫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건 둘째치고 더러운 오물이 가득한 웅덩이에서 태어나 웅덩이에서 살다가 웅덩이에서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가 자신의 세계가 오물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대부분 사람은 흩어지고 깨지는 혼란의 질서가 지배하는 최악의 환경에서 살면서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렇듯 빅뱅 이후 우리 우주는 대혼돈을 향해 거침없이 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구도 50억 년 후면 태양에 흡수되고, 끝내는 우리 우주도 사라진다고. 빅뱅 이후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유일한 법칙,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질서가 바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공장 굴뚝에서 나온 하얀 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 중으로 퍼져나가며 흐릿해진다. 이미 퍼진 연기가 다시 모여 굴뚝에서 나온 직후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듯 연기가 퍼져나가는 현상이 엔트로피 증가다.
연기가 굴뚝에서 나오는 순간에는 연기의 경계가 선명하다. 섞이기 이전 그러니까 확실히 구분되는 것을 질서가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기가 대기로 흩어지면서 섞여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를 무질서라고 한다.
엔트로피란 한마디로 ‘무질서의 정도’ 또는 '에너지의 흩어진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다. 우주는 빅뱅이라는 완벽에 가까운 질서와 극도로 집중된 에너지의 순간에서 시작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무질서해지고 에너지가 흩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갓 피어오른 굴뚝 연기가 선명한 형태를 유지하다가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방향성이며,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시간의 화살'이다.
갓난아기로 태어나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분명 엔트로피 감소인데?
지구상에는 흔하디 흔한 게 생명체지만, 우주의 입장에서는 생명체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생명체는 계속 진화하면서 정교해졌다. 단세포 생명체에서 수많은 세포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고등 생물로 계속 진화해 왔다. 갓난아기는 성인이 되고, 새끼손가락보다도 가늘었던 소나무가 아름드리나무로 자란다.
유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은 말했다. 이 넓은 우주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고 말이다. 하지만, 섞이고 깨지고 흩어지는 질서가 지배하는 우주에 생명체가 없다고 하여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생명체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서 예외 된 걸까.
그렇지 않다. 단순하게 생명체가 진화하거나 자라는 것만 봤을 때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 같지만,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많은 양의 물질을 섭취하고, 배설한다. 섭취하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물질은 흩어지고 섞이면서 엔트로피 증가 현상을 보인다.
쉽게 말해 생명체가 커가면서 감소하는 엔트로피 양보다 생명체가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 증가하는 엔트로피 양이 많다. 결과적으로는 생명체는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다른 생명체보다 인간은 엔트로피 증가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가 있다면 마구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을 칭찬하겠지.
지구의 허용 가능한 엔트로피는 정해져 있고, 그 값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엔트로피가 허용가능한 임계점을 넘어가게 되면 끝이다. 엔트로피를 반대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엔트로피 증가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제러미 레프킨 ‘엔트로피’중에서>
엔트로피는 방향성으로 표시한다.
엔트로피의 좁은 의미로는 열의 이동으로 인한 에너지의 증가 또는 감소 정도를 나타내는 양이다. 예를 들면 같은 상태에서 온도가 높다는 건 분자나 원자들이 빠르게 이동한다는 의미며, 반대로 온도고 낮다는 건 느리게 운동한다는 의미다, 이 두 물체를 섞으면 빠르게 운동하는 물체의 분자나 원자가 느리게 운동하는 물체로 이동하여 섞인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날 때 차가운 물을 적신 수건을 이마에 대면 열이 내려가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수건에서 찬 기운이 이마로 옮겨져 열을 내린 게 아니라, 몸의 뜨거운 열이 찬 수건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항상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하고, 이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좁은 의미의 엔트로피다.
얼핏 생각하면 눈의 차가움이 손으로 옮겨져서 손이 차가워진 것 같지만, 이는 틀린 답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의하면 열은 항상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한다. 손바닥의 따뜻한 열이 눈덩이에 뺏겨 손이 차가워진 것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의 엔트로피는 인간이 늙고 죽고, 우주가 계속 팽창하여 끝내는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우주가 완벽한 무질서로 계속 직진한다는 것이다. 좁은 의미든 넓은 의미든 엔트로피의 최종 목적지는 열적 평행상태다. 뜨거운 이마에서 차가운 수건으로 열이 이동하여 이마와 수건의 온도가 같거나, 우주가 계속 팽창, 즉 빅뱅 직후의 초고온 상태에서 저온 상태로 변하다가 우주 어디에나 온도가 같은 열적 평행상태가 되면 더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열 평형상태를 열 죽음(Heat Death)이라고도 한다. 열 죽음은 엔트로피가 최대화되어 우주에 쓸만한 에너지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우주의 온도는 어디나 동일하며, 물질이 점점 더 작게 쪼개져, 더는 물질 간 상호 작용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명체는 물론 어떤 형태의 움직임도 없다. 인간의 입장에선 완벽한 종말이지만, 우주는 완벽한 평온함이라고나 할까.
날씨 이야기를 한다면서 왜 생뚱맞게 엔트로피?
날씨의 변덕은 모두 열 때문이다. 북쪽의 차가운 기단과 태평양에서 발달한 따뜻한 기단이 우리나라에서 만나 생긴 정체전선으로 여름철 장마가 이어지고, 겨울철 차가운 북서풍이 따뜻한 서해를 지나면서 눈구름이 형성되어 겨울철 서해안에 폭설이 내리며, 한여름 뜨겁게 달궈진 지면의 공기가 가벼워지면서 급속하게 상승하는 바람에 적란운이 발달하여 소낙비가 내린다. 이렇듯 날씨는 차가움과 뜨거움의 치열한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엔트로피의 개념을 몰라도 날씨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맨눈으로 별을 관찰하다가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엔트로피의 개념을 알면 날씨 이야기가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될 것이다.
우리 우주의 모든 존재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한다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너무 막연하고, 정의조차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이면 왜 엔트로피를 가장 먼저 언급했는지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