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침묵
침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이 정리되고, 가라앉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 시간이다.
우리는 말이 없으면 뒤처진 것 같고,설명하지 않으면 오해받을 것 같고,반응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침묵을 공백이나 패배처럼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지점에 이르면 말은 점점 가벼워지고, 침묵은 점점 무거워진다.
침묵은 감정의 장례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억울함과 분노, 설명하고 싶은 욕구를
마구 쏟아내지 않고 조용히 묻어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자기 존엄의 마지막 방어선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때,모두의 요구에 다 응답하지 않아도 될 때,사람은 비로소 자기 안으로 돌아온다.
신앙 안에서도 침묵은 종종 오해받는다.
기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열심이 식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말씀하시기 전에 침묵하신다.
광야의 40년이 그랬고 30년간 숨은 예수님의 삶이 그랬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깊은 침묵속에 계셨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준비였다.
침묵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은 신뢰일 수 있다.
“지금은 말로 붙들지 않아도 주님이 나를 놓지 않으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있을 때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관계에서 물러선 침묵, 기도가 안 나오는 침묵은 퇴보하는것이 아니라 전환하는 것이다.
이전의 방식이 끝났음을 인정하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성숙한 멈춤이기도 하다.
침묵은 우리를 가볍게 한다.
불필요한 설명,불필요한 관계,불필요한 자기증명을 내려놓게 한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너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니 침묵을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의 조용함은 사라짐이 아니라 깊어짐이다.
말이 다시 필요해질 때, 그 말은 훨씬 적고
훨씬 진실해질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꾹꾹 눌러 참는 것과 절제된 침묵은 내면의 태도와 의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꾹꾹 눌러 참는 것은, 내면에 느껴지는 감정이나 생각,욕구를 억지로 눌러서 표출하지 않는 상태
이다.
억눌림과 긴장감이 계속 쌓이고 속으로는 화가 쌓이고, 불만과 스트레스가 남아 있어서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때로는 폭발할 위험이 있다.
‘참아야 한다’는 강박이나 두려움으로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말하면 안 돼”라고 마음속으로만 참으며 속으로 분노가 쌓이고 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 봐 억지로 웃으며 넘어가는 것으로 끝내 마음이 불편할수 있다.
그러나 절제된 침묵은 다르다
감정이나 생각을 선택적으로 조절하여 말하지 않고 행동을 절제하고 조심하는 상태이다.
내적으로는 평온하고 중심이 잡혀 있으니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지하고 있지만, 적절한 시점이나 방법을 기다리게 된다.
이럴때 마음속엔 긴장감이 거의 없고, 능동적으로 자기 통제를 할수가 있다.
지혜로운 판단과, 배려, 그리고 상황속에서 필요할때 선택할 수 있는 중심이 있는것이다.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또 불필요한 말로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 잠시 절제하며 침묵하는 것. 참 귀하다.
화가 나더라도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차분히 기다리고 건강한 내적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제한하며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 갈 수가 있다.
상황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고 상황을 책임지고 해결해 나갈수 있다.
참 멋지고도 자기 주도적인 상태라 할수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것이 침묵이 아니라 내면의 힘을 가지고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도 여유를 가지면서 침묵 할 수 있는것. 그것이 진정한 침묵이다.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그린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