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되지 않는 존엄성
[연재:시리즈6]
강요된 헌신
손상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로열티가 손상되었고 타격을 입었다면 손상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더 단단하게 세워질 것이다.
마치 사자가 살이 뜯겨져도 자가 치유가 끝나면 새살이 돋고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라지지 않는 DNA처럼 우리의 고유성도 그러하다.
잠시 주눅들고 잠시 혼돈스럽고 잠시 타격을 받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독보적인 고유성.
딴 방향으로 갔다가도 결국은 되돌아 오게 되는 회기성.
부정할수 없는 부정되지 않는 절대성.
그것들이 우리안에 있다.
우리가 지혜라고 부르는 것들이 우리의 원심, 우리의 원래 마음의 중심에 깊이 뿌리 내리는 동안 많은 일들을 거친다. 강요도 그 중의 하나다. 강압도 그중의 하나다. 도피나 회피도 그중의 하나일 뿐이다. 탈선이나 방황도 그중의 하나다. 우리가 거치는 일중에 하나다.
내가 만났던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재혼가정에서 부당함을 겪으며 인격이 손상되는 일들을 무수히 겪던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였다. 자신의 이름대신×××아 라는 욕설로 불리던 아이. 동갑내기 의붓 자매로 부터도 같은 욕설을 듣고 차별대우 받던 아이. 아이는 대들고 싸우고 격하게 치닫느라 더 많이 욕을 듣고 맞았다. 어느날 이 아이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능청스러움. 그것이 그 아이의 지혜였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때 그 아이는 나즈막히 외쳤다. 난 ×××이 아니야. 그리고 욕설을 뱉는 자에게 네~하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은 자신의 인격으로 할 수 있는 자신의 인격을 보여주는 대답과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능청스러워 보이는 아이의 행동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미쳐날뛰던 모녀는 자신들의 비인격적인 언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었다.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대들고 욕하고 싸우고 했던 자신의 언행이 자신을 망친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부도덕한 그들의 언행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인격을 가지고 답하고 행동할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재미를 잃은 건지 부끄러웠던 건지 아니면 혼돈 스러웠던 건지 여튼 자신들의 못된 언행을 덜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걸 기대한것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결과가 더이상 그 아이에겐 상관할 바가 아니게 되었다.
가끔 그 아이가 생각난다.
진짜 사랑이 무언지 왜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지 왜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지 그리고 불합리함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것과 내면에서 밀쳐내고 이기는 지혜가 어떻게 다른것인지 그 어린 나이에 그것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지 아이는 배웠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자신을 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거절했으며 거부했다. 같이 욕하고 못되게 말하는 것이 시원하지 않고 한심하게 여겨졌으며 자신을 망치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는 꺽이지 않았다. 욕설을 들으며 명령에 굴복한것이 아니었다. 욕설을 거부했으며 자신이 선택한 행동을 도리에 맞게 했던것이다.
어떤 어른도 그 아이처럼 강하지 못했다.
아이는 속으로 무수히 되뇌었다. 나는 존귀한 자야. 나는 소중한 자야. 나는 사랑이 무언지 아는 사람이야. 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아.
그당시 비닐 하우스에서 살던 아이들도 있었고 가정이 온전한 집에서 크는 아이가 많지 않았던 그 동네. 바로 길건너 편에는 재개발로 빽빽이 들어선 신축 아파트 들과 거기에 살던 부유했던 아이들. 이렇게 상대적인 동네에서 그아이가 교회 주일학교에 와서 고민했던 일은 그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험악한 형편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강압속에서 강요된 헌신이 아닌 자신의 온전한 선택으로 살수 있을까.
무조건 사랑할수도 무조건 용서할수도 없는 자들로 부터 어떻게 하면 자신의 숭고함이 다치지 않도록 지킬 수 있을까.
아이는 거짓되지 않았고 자신을 속이지도 않았다. 하는 척 하지도 않았고 안 하는 척 하지도 않았으며 진심으로 자신이 존엄을 굳게 믿었다.
그 놀라운 아이가 지금쯤 어떻게 컸을지 가끔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스스로 대변했던것 같다.
결국 강요된 헌신은 외부적 강압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으며 비굴하지도 굴복 당하지도 않았고 합리화 하지도 않았다.
합리화는 또다는 거짓을 만들어 내고 오래가지 못하고 고통스럽다.
그것은 자책과 죄책을 피해 달아날 때 생성된다.
그런 합리화는 자신을 속이는 자기 기만으로 끝난다. 그러나 훼손되지 않는 궁극의 존엄은 그 모든 상황을 넘어서게 했으며 조용하고도 강한 침묵과도 같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데까지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이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결과를 가져다 준다.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선택하시길.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그린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