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것은

바꿀수 있는 '용기'수용할 수 있는 '겸허함'

by You앤Me Art Place

“한번이라도 비행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그 후로는 영원히 하늘을 바라보며 이 땅을 걷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이야말로 네가 한때 있었던 곳이며,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어 끊임없이 갈망하게 될 곳이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한 사람은

다시는 이전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걷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늘 하늘을 향하고,

마음은 그가 다녀온 그곳으로 돌아가길 갈망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행’은 여러가지 높은 차원의 저버릴 수 없는 어떤 차원을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넘어선 소명이나 진리에 대한 높은 가치관이나 진정한 자유에의 갈망 일수도 있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날고 싶어했다.

'비행'을 통해 한계를 넘고자 하는 그의 갈망이 날고자 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본연의 깊은 영혼의 갈망을 담고 있기도하다.

다방면에 천재적이었던 그는 물리학이나 해부학 그리고 공기역학 등을 통해 [인간의 비행]을 고민했다.


한 번 새롭게 눈을 뜨고 새로운 시선으로 ‘깨어난’ 사람은 계속 그 높은 곳을 바라며 나아간다.

무지에서 벗어나 우물에서 벗어난 옹졸한 개구리가 세상밖의 모험을 통해 더이상 우물안에서 만족하며 살수 없다.

주님의 사랑을 한번 경험하면 그만둘 수 없고 더 높은 곳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비록 몸은 땅에 묶여 있어 날지 못한다 해도 나아가는 방향 만큼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날마다 나아가고자 하는것이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지만 동시에 부활을 꿈꾸고 에덴에서 살던 때를 기억하여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본능 이기도 할 것이다. 돼지가 아니기에 먹고 사는 것을 떠나 끊임없이 추구하며 갈구하며 영적인 것을 채우려 한다.


발은 땅에 붙이고 있지만 마음은 하늘 저 위를 향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에 발이 묶이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꿈꾼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단 하나 이므로 거침없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쓴 기도문을 보자.


니버의 평온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시고,

한 순간 한 순간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고난을 평화로 가는 길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이 죄 많은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내가 주님의 뜻에 나를 맡길 때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바르게 하실 것을 믿게 하시어,이 세상에서는 적당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고

장차 올 세상에서는 주님과 함께 더없는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사람관계 에서 갈등을 겪을 때 또는 불합리한 상황이나 환경 또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고민한다.

우리의 고민은 지혜롭기 보다 한쪽으로 치우칠 때가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는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 뭘 더 바라겠어.

"그는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 나는 어떻게 인정 할 것인가? 어떻게 내가 주체가 되어 방향을 가질 것인가?

'그런 사람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나의 열정으로 고쳐놔야 겠다' 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니 나는 여기까지만 해야지 안 그러면 무례한 언행을 하게 되거나 지나친 노력으로 내가 소진 할수 있으니까'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돕고 싶고 고칠 수 있도록 좋은 모습을 본으로 보여주는 굿샘플이 되어주고 싶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내 노력한 만큼 조급한 실망감으로 인해 나의 열심이 허사가 된것 같아 분노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애증관계도 이런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상대방에 대한 새로운 조정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와 맞닿아 있다.

상황 형편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평온한 마음은, 자포자기나 낙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각도로 인식하여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자존심 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수용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경험을 한번 경험 한다면 계속 그런 방식으로 비상하고 싶을 것이다.


땅을 보며 한숨을 꺼뜨리기 보다 높은 곳을 보며 비상해보자. 허황된 비행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겸손을 통해 지혜로운 수용과 함께 자신의 방향이 달라지는 새로운 차원의 [인생의 ]을 보시길 바란다.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그린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