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세입자와 더 이상한 집주인 3-1

방 한 칸만 월세 들어올래요?

by 허튼이

1년 전.


갈비찜이 내 앞에만 놓여있다.

나와 아내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는다.

맞은편에 앉으면 조금 멀기도 하고 옆에 앉아서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게 좋아서 그렇게 된 듯하다.

연애할 때를 돌이켜 보면 걸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드라이브를 할 때도 항상 옆에 있다.

무엇보다 옆에 있으면 언제든 손을 잡을 수 있어서 좋았고

맛있는 반찬을 숟가락 위에 얹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갈비찜이 내 앞에만 놓여 있다.

아내는 상을 차리고는 라면을 하나 끓인다.

난 라면을 먹지 앉지만 아내는 종종 라면을 끓여 먹고는

해서 혼자 라면을 먹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라면이 완성되는 동안 내 앞에 놓인 갈비찜을 바라봤다.

아내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진급 시험을 앞두고 보름 동안이나 공부에만 매진했고

아내와는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시험을 보고 들어오니 아내가 갈비찜을 만들고 있었다.

보글거리는 갈비찜 앞에 서서 연신 간을 보며

"맛없으면 어쩌지?, 맛없으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하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맛이 없을리가 있을까?

날 위해 음식을 차려주는데 맛이 뭐가 중요할까.

"오빠, 이리 와서 간 좀 봐봐. 어때? 괜찮아? 짜지 않아?"

아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 딱 좋은데? 당근만 익으면 바로 먹어도 될 것 같아."

"정말? 정말 괜찮아?" 아내가 미심쩍게 되묻는다.

갈비찜은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의심의 여지없이

요리를 잘했다. 난 음식을 딱히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아내가 요리도 잘하니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음식이 아니라 아내의 태도였다.

평소보다 더 살가운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지쳐 보이는 내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함이었을 테다.

하지만, 내가 지쳐 보이기 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난 평소보다 확연히 말수가 줄어든 상태였고 아내에게

먼저 말 거는 일도 거의 줄어든 상태였다.

스트레스와 고민이 많아졌을 때의 내 모습니다.

그런 모습 아내도 알았을 테지.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다.

내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오직

시험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와 취업까지 시험이란

시험은 수십 번을 겪어 봤을 텐데 서른 중반이 되어

한번 더 친다고 그렇게까지 지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의 악질적인 면은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 수 없을 때다.


알 수 없을 정도인 아주 약간의 어색함과 괴리.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괴리감.

미세하게 초점이 빗나간 필름사진처럼

한 걸음 물러서면 괜찮다가도 그것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엇나간 프레임 속 공간.

그래. 이 공간.

내 공간으로부터 묘하게 엇갈려 버린 내 몸과 마음이다.

이렇게 또다시 말수가 줄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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