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도 힘이 있다

by 봄날의꽃잎


“왜 가만히 있어? 할 말 없어?”

젊을 때 자주 듣던 말이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굳이 내뱉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때는 그게 남들에게는 답답한 성격이라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50이 되고 보니 안다.

침묵은 단순한 고집이나 소극성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또 다른 힘이라는 것을.


예전엔 억울하면 따지고, 서운하면 곧장 토해냈다. 그렇게라도 풀어야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모든 말이 다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침묵 속에 흘려보낸다. 그 대신 꼭 필요한 말만 남는다. 그래서 침묵은 무심함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배려가 된다.


친구들과 모여 대화를 나눌 때도 그렇다. 어떤 이는 오디오가 비는 걸 못 견뎌 쉴 새 없이 이어 말한다. 순간순간 침묵이 찾아오는 게 마치 어색하고 불안한 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그 고요가 오히려 익숙하다. 꼭 무언가를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 침묵은 대화의 빈칸이 아니라, 여운이고 쉼표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시간, 그 사이사이에 스며드는 고요까지도 나는 좋아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이제는 이런 말이 더 익숙하다.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걸 듣는다. 상대의 표정, 작은 한숨, 말하지 못한 뒷이야기. 말보다 귀 기울임이 더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이 많다.


침묵은 나를 덜 소모하게 만든다. 젊을 때는 억울함을 풀어야 직성이 풀렸다면, 이제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내 마음을 지킨다. 괜한 다툼을 만들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인다. 침묵은 방패이자 울타리다. 나를 단단하게 세워주는 은밀한 무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침묵은 세상의 소리를 더 크게 들려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남편의 기척, 부모님의 숨결, 그리고 내 안에서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까지.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선명해진다.


외향적인 내향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사람들 속에서 웃고 떠들며 활력을 얻는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찾아오는 고요, 그 침묵이야말로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이다. 활기와 고요, 대화와 침묵,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나는 단단해진다.


50대의 법칙 하나를 덧붙인다.

침묵은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삶을 품는 또 다른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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