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하는 글
예전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좋아서 모임이면 빠지지 않았다.
늘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 말도 하기 싫은 공허한 시간이 찾아왔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오래 함께 있으면 지쳐버리는 외향적인 내향인이었다는 걸.
어릴 때부터 나는 활발하고 성실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누군가를 챙기고, 공감하고, 분위기를 맞추는 일에 익숙했다.
그런 성향이 나를 성장시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너무 바빠졌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지,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하는 일인지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졌던 시절이 있었다.
오십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속도가 달라졌다.
예전처럼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해야 한다’보다 ‘하고 싶다’를 먼저 생각하게 됐고,
사람들 속에서 존재감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조용한 자리에서 나답게 머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대화의 중심에 있지 않아도 편안하다.
모임 자리에서도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
침묵 속에서도 마음이 통할 때가 있고,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걸 안다.
그건 어쩌면 젊을 땐 몰랐던, 오십대의 여유이자 지혜일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은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고요한 새벽, 커피를 내리고, 창밖의 나무 그림자를 바라보는 그 순간이 오히려 가장 평온하다.
젊은 시절엔 늘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가치 있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그냥 존재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그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내향적인 내 마음을 천천히 치유했다.
이 시리즈를 쓰며 나를 여러 번 마주했다.
무리하게 웃던 날,
거절하지 못해 지쳤던 날,
혼자 있고 싶은데 괜히 외로워서 누군가를 찾았던 날들까지.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글인 줄 알았는데,
결국은 나를 이해하기 위한 기록이었다.
내향적이라는 건 부족함이 아니라,
세상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다.
크게 웃지 않아도 진심은 전해지고,
멀리 가지 않아도 세상은 여전히 나를 향해 열려 있다.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믿는다.
오십대의 법칙이 있다면,
그건 ‘덜어내기’와 ‘머무르기’의 균형이다.
무리하지 않되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기대보다 나의 리듬을 먼저 존중하는 일.
그게 내가 배운 오십대의 지혜이자,
외향적인 내향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제 나는 외향적인 내향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나답게.
누구보다 나를 오래 알고,
가장 나를 따뜻하게 이해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