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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빙떡, 복을 짓던 손길

by 봄날의꽃잎


하얗게 핀 메밀꽃밭은 달빛이 내려앉은 것처럼 환했다. 여름 끝자락, 바람에 흔들리는 메밀꽃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을이 곧 찾아올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메밀이 여물면, 추석 상에는 늘 빙떡이 올랐다.


메밀은 척박한 제주 땅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던 곡식이었다. 다른 작물들이 버티지 못하는 곳에서 꽃을 피우고 알을 맺으니,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생명의 곡식이었다. 속을 편안히 하고 혈맥을 도우며 몸에도 이로웠으니, 기름진 음식들 속에서도 메밀로 만든 음식은 늘 귀했다.


어릴때 추석 무렵이면 큰집, 그러니까 할머니 댁은 친척들로 늘 붐볐다. 대문 앞에는 신발이 가득 쌓였고, 마당에서는 사촌들이 뛰어놀았다. 부엌은 명절의 심장처럼 분주했다. 커다란 철판이 달궈지고, 할머니는 묽게 푼 메밀 반죽을 국자로 떠 얇게 흘려냈다. 반죽은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동그랗게 퍼졌고, 그 위에 소금에 절여 숨이 죽은 무채가 소복이 올려졌다. 할머니는 주걱을 살짝 대고 능숙하게 돌돌 말아냈다. 얇지만 질긴 메밀피 속에 아삭한 무가 감싸인 빙떡은 접시 위에 차곡차곡 포개졌다.


부엌 가득 메밀의 구수한 향이 퍼질 때면, 내 손에는 늘 갓 부친 빙떡이 하나 쥐어졌다. 사실 어린 나에게 빙떡은 처음엔 썩 매력적이지 않았다. 송편의 달콤함이나 전의 고소함이 더 좋았으니까. 그런데 할머니는 늘 웃으며 말씀하셨다. “먹어봐라, 이 맛은 오래 남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하고 은근히 번지는 맛에, 어느새 추석이면 기다려지는 음식이 되었다.


추석 상에는 늘 솔라니(옥돔)도 함께였다. 노릇하게 구워낸 옥돔은 두툼한 살 속에 은근한 짠맛이 배어 있었다. 한 점 집어 들면 바다 내음이 먼저 퍼지고, 이내 담백하고 고소한 살맛이 입안 가득 번졌다. 빙떡 한입과 옥돔 한 점을 함께 넣으면, 들판의 담백함과 바다의 짠맛이 한데 어우러져 추석의 풍성한 맛이 되었다. 그 시절 옥돔은 귀한 생선이라 명절이나 제사 때만 맛볼 수 있었기에, 그 맛은 더욱 특별했다.


내 몫은 또 있었다. 완성된 빙떡을 접시에 담아 골목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따끈한 빙떡을 두 손으로 들고 골목길을 오가면, 이웃집 문이 열리고 환한 미소가 나를 맞았다. “고맙다이, 잘 먹으켜이.” 그 인사 속에는 명절의 정이 담겨 있었다. 돌아오는 길, 할머니의 눈빛은 언제나 흐뭇했다. “나누어야 복이 생긴다.” 그 말씀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할머니의 빙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온 가족과 이웃에게 나눔을 전하는 손길이었고, 결국은 복을 짓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게 추석의 빙떡은 여전히 그리움 속의 복된 맛으로 남아 있다.


요즘은 예전처럼 추석을 크게 하지 않는 집이 많다.

나 역시도 이번 긴 연휴를 온전히 쉬며 보낼것같다. 여자로서, 또 며느리로서 음식 준비에 시달리지 않는 명절은 분명 한결 가볍고 편안하다. 하지만 때때로 그 복작복작하던 풍경이 그리워진다. 부엌 가득 차던 메밀 향, 솔라니 굽는 냄새, 친척들의 웃음과 발걸음으로 북적이던 마당…. 지금의 고요한 추석과는 다른, 그 시절만의 온기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한 음식이나 풍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함께 살아냈던 온기일 것이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던 그때처럼,

할머니의 빙떡이 전해주던 정과 나눔이 오늘의 우리 삶 속에서도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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