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는 건 바닥인데, 정리되는 건 마음이었다

by 봄날의꽃잎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면,

가끔은 ‘조용히 움직이는 시간’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


내향인이라고 해서 늘 멈춰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세상의 빠른 리듬이 아닌,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움직일 때

비로소 숨이 고르게 이어진다.

내향인은 사람들 틈에 오래 머물면 금세 마음의 에너지가 줄어든다.

그렇다고 세상을 피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세상과 나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필요할 뿐이다.

그 거리가 있을 때, 비로소 숨이 쉬어지고 마음은 다시 충전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정리하면서 쉰다.

사람들은 ‘쉬는 날엔 좀 누워 있어야지’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정리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의식이다.

내향인에게 정리란, 공간의 질서를 맞추는 동시에

마음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먼지 쌓인 선반을 닦고, 싱크대의 물기를 닦고,

탁자 위 흩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그 단순한 동작들 속에서

묘한 평온을 느낀다.

무질서한 공간이 정리될 때마다 마음속 혼란도 조금씩 정리된다.

내향인은 눈앞의 환경이 곧 마음의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깨끗해진 공간을 보면, 비로소 내 안의 소음이 잦아든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옷방을 정리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꼭 묻는다.

“또 옷 정리야?”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응, 계절이 바뀌잖아.”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겨울 코트를 넣고 봄 원피스를 꺼내는 그 시간은

내 마음도 계절을 따라 옮겨가는 의식이다.

옷을 개며 지난 계절을 떠올리고,

그때 입었던 옷에 얽힌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내향인은 감정과 기억을 곱씹는 사람이다.

그래서 옷 하나, 향기 하나에도 마음의 온도가 남아 있다.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가끔 정리를 하다 손이 멈춘다.

주름이 잡힌 옷을 다리미로 펴면서,

마음속 얽혀 있던 생각들도 함께 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한 계절을 정리하고 나면,

옷장 문을 여는 순간 공기부터 달라진다.

산뜻한 냄새, 정돈된 색, 가지런히 놓인 옷들.

그 조용한 질서 속에서 마음이 안정되고,

작은 통제감이 나를 든든하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집안일이겠지만,

내게는 이 모든 과정이 명상 같은 시간이다.

내향인은 생각이 많고 감정이 섬세하다.

그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는 방법이 말이 아니라

손의 움직임일 때가 많다.

닦고, 개고, 정리하는 동안

머릿속 생각이 단순해지고 마음은 한결 맑아진다.

그래서 청소는 나에게 쉼이자 충전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활발한 자리에서 에너지를 얻지만,

나는 이렇게 손을 움직이고, 질서를 세우는 동안 다시 살아난다.

정돈된 공간이 나를 안정시키고,

그 속의 고요가 마음을 새롭게 한다.

내향인의 정리는 세상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다독이는 방식이다.


오십이 되고 나니 이제 안다.

움직임이 꼭 크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내향인의 움직임은 작고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집중이 있다.

사람들 틈에서 한 발 물러나,

하루의 끝에 청소를 하며 계절을 맞이하는 일.

그것이 내가 나답게 살아 있는 증거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한다.

닦는 건 바닥인데, 정리되는 건 마음이었다.

이 고요한 움직임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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