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며 나를 다시 쓰다

by 봄날의꽃잎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누구였을까?"


엄마, 원장님, 아내, 누군가의 딸. 내 이름을 부르기 전에 따라붙는 수많은 역할들 속에서 정작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졌다. 하루는 아이들을 돌보고, 하루는 부모 상담을 하고, 또 하루는 집안일을 챙기며 정신없이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을 보면서 문득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필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따라 쓰기였다. 멋진 문장을 베껴 적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반복해 쓰는 일. 하지만 글씨를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면서 깨달았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글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남의 문장을 따라 쓰는 줄만 알았던 필사는, 어느새 내 안의 생각을 끌어내고 있었다. 어떤 문장에서는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고, 어떤 구절은 내가 잊고 있던 감정을 꺼내 주었다. 그리고 문장을 적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필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필사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예전의 나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시작조차 못 했고,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색했다. 하지만 필사를 하면서 알게 됐다. 잘 쓰는 것보다, 나를 솔직하게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필사를 하면서 나는 글을 쓰는 법을 배웠고, 더 나아가 나를 표현하는 법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필사한다. 하루 한 줄씩 나를 다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글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로 돌아오고 있다.


"필사하는 손끝에서, 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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