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나 타고 다닐걸.

차는 왜 샀니..

by 달콤살벌꼬마마녀

제목 그대로다..

말이나 타고 다닐걸...


20년째 장롱면허 소유자인 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초보운전자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호기롭게 달려갔다. 동네 서점에서 운전면허 문제집 한 권 달랑 사들고 집에 와 펼쳐봤을 때 생각보다 많은 내용에 1차 멘붕이 왔지만, '수능도 쳤던 나인데 이까짓 내용쯤이야 껌이지, 후후훗~'


그래도 나름 시험은 시험이었던지라 밑줄도 치고, 형광펜으로 색칠도 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더랬다.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니 가장 두뇌회전이 빠를 시기, 당연히 필기시험은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여 사람들의 박수갈채(그 당시 운전면허 시험장에선 고득점자에게 박수를 쳐주었다)를 받았고, 기능연습장에서도 늘 만점을 기록하였기에 난 면허시험도 1번에 통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내 인생 역사 상 당락이 존재하던 시험에 있어서는 단 한 번도 떨어진 역사가 없을 만큼 백전백승의 전력이었기에, 그 당시 나의 자신감은 잭과 콩나무처럼 하늘을 찌를 기세. 하지만 모든 스토리엔 반전이 늘 있는 법. 그 누가 알았겠나.. 그런 내가 우습게 봤던 운전면허 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될 줄이야..


기능시험장.

컨디션은 최고였다. 시험장에는 내 또래도 간혹 있었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있으셨고, 무엇보다 몇몇 분은 재수, 삼수, N수생 수험자들이었다. 그때도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이게 뭐 어려운 시험이라고 떨어지냐고.. (지난날의 기고만장했던 저를 깊이 반성하는 바입니다...) 나보다 먼저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분들의 희비교차를 보며 난 한 치 앞도 모른 채 깜찍하게도 다음 시험 일정인 도로주행 상상을 하고 있더랬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도 긴장감 따위란 1도 없었다. 난 자신이 있었으니까. 마지막 코스까지도 단 1점의 감점도 없이 순탄하게 진행된 시험, 난 소리 내어 큭큭 웃었다. 합격이겠지? 그것도 만점으로 말이야~


그러나 마지막 T자 코스, 주차까지 무사히 마치고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는 순간!!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둔탁한 무언가를 밟은 느낌이 들더니 '삐 ~' 기분 나쁜 기계음과 함께 내 귓가를 때리는 '실격입니다.'

'뭐라고? 내가 실격이라고?? 이거 잘못 채점한 거 아냐?'


그렇다.. 난 아슬아슬 간당간당한 불합격선도 아닌 만점에서 한 번의 실수로 그 자리에서 바로 실격처리가 되었다. 원인은.. 주차 후 빠져나오는 구간에서 그만 연석을 밟고 올라탄 것..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다던 말이 이럴 때 쓰는 거였구나. 내 차를 원위치 시키려는 시험장 감독관과 함께 차를 타고 기능장으로 돌아오는 그 몇 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괴감, 부끄러움, 분노, 현실부정까지..

인생 첫 느껴보는 패배감이랄까..

기분이 참.. 묘하게 더러웠다.


뭐 그래도 어쩌겠어. 재수해야지 ㅋㅋ

절치부심 하고 맹렬한 연습 끝에 다시 치른 시험에선 다행히 만점을 기록. 이후 이어진 도로주행에서도 고득점을 받아 비록 재수는 했지만 운전면허증 취득에 성공했다.


면허만 따면 바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줄 알았다.

뚜껑 열린 오픈카를 타고 한 손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음악을 들으며 뻥 뚫린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상상..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아니 근데 실제로 다들 그러고 있던데?? (나만 빼고)


그런데 왜 나는 운전대만 잡으면 손이 차가워지고,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배가 아프며 숨이 가빠지는 것인가..이 세상 모든 '빵'이 나를 향한 것 같고, 주변 차들이 전부 나한테 달려드는 것만 같으며, 평소에 잘만 다니던 길이 다 새롭고, 도로에 신호등은 왜 이렇게 많으며, 차선은 또 왜 이렇게 좁지? 인도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 것만 같고, 그러다 내가 사고를 낼 것 같은 불안감. 그리고 뭣보다 네비 소리가 귀에 안 들림. 애초에 네비 따위 보고 들을 만한 여유도 없을 뿐더러, 초긴장모드라 음악은커녕 누가 말이라도 걸면 운전하는데 방해되니까 조용히 하라고 버럭~ 대체 운전하면서 간식도 먹고, 화장도 하고, 음악도 듣고, 주변 경치까지 보는 건 어느 경지에 오르면 가능한 건가요??


'자차가 없어서 그래.'

'운전연수도 내 차로 해야 된다 그랬어.'

'내 차가 없으니 연습을 못하잖아, 그러니까 차 살래 '

이런 기적의 논리로 내 생애 첫 중고차도 장만했다. 그런데 그 뒤가 더 문제.

차는 있으나 내 운전 실력으론 주차장에서 차를 못 뺌.. (이 동네는 주차난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주차지옥)

만약 운 좋게 뺀다 한들, 돌아와서 다시 주차 불가 ㅋㅋ 차를 머리에 이고 들어올 수는 없잖습니까..

옛날차라 요즘 차처럼 빵빵한 옵션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엔 면허시험장 차들은 더 옛날버전.


비 오는 날은 비가 와서..

눈 오는 날은 눈이 와서..

지금은 깜깜해. 어두우면 운전 못해..

오늘은 운전할 기분이 아니야..

내일은 두통이 올 예정이야..


그럼 대체 운전 가능한 날은 언제??

Nobody knows..


분명 주차장에 내 차는 있는데 이용을 못함. 주차된 내 차를 볼 때마다 오늘은 도전해 볼까 말까 무한굴레 딜레마에 빠지지만 결론은 늘 같음. 일부러 걷기운동도 하는데 그냥 걸어가지 뭐. (답정너, 이럴 거면 차는 왜 샀니..)

내 차인 듯, 내 차 아닌, 내 차 같은 차...

가깝고도 먼 우리 사이.


N년째 내 버킷리스트.

올해는 꼭 운전 마스터 하기.

그런데 올해도 다 갔네.....